국민의힘이 9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정상 배치 지연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문 정부 관련자 조사를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경북 성주에 임시 배치된 사드 기지의 전자파가 인체 보호 기준의 0.2% 수준으로 무해(無害)함을 확인하고도 5년 내내 정식 배치를 미뤘는데 그 과정을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여당은 당시 정부가 문 대통령의 방중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과 사드 운영을 제한하기로 했다고 보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영향평가가 어려운 작업도 아니고 오랜 기간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는데, 누군가 커다란 힘을 가진 권력자가 환경영향평가를 지연시키도록 압력을 넣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국방위 여당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5년간 미국 국방부가 수차례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중대한 안보 사안이었고, 제기된 의혹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당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폐 사건 때처럼 감사원 감사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여당 의원들은 사드 관련 ‘3불(不) 1한(限)’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3불 1한은 사드 추가 배치, 미 미사일 방어(MD) 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3불(不)’과, 주한 미군의 사드 운용을 제한하는 ‘1한’을 의미한다. 중국은 양국 간 약속이라고 주장해온 반면,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은 3불에 대해선 “국가 간 합의나 약속이 아닌 정부의 입장 표명일 뿐”이고, 1한은 “중국이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해왔다.
국방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문 정권의 사드 훼방은 모두 이해찬 전 대표의 방중 이후 본격화됐다”며 이 전 대표 조사를 촉구했다. 이 전 대표는 2017년 5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 측은 이 전 대표에게 사드 완전 철수, 한국 측의 유감 표명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에게 방중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할 말을 좀 제대로 했다고 생각이 된다”고 했다.
같은 해 5월 30일 문 전 대통령은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충격적”이라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을 인사 조치했다. 7월 5일에는 사드 기지에 대해 통상 1년 이상 걸리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10월 30일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는 방식으로 3불 입장을 밝혔다. 다음 날 남관표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과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장 조리(차관보) 명의로 양국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고 발표하고, 40여 일 후 문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중국과 벌인 사드 관련 협상은 외교부 대신 정의용 안보실장, 남관표 차장, 최종건 비서관 등 청와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기지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는 문 정부 내내 이뤄지지 않았고, 윤석열 정부 때 시작돼 지난 6월에야 완료됐다.
여당의 사드 배치 지연 조사 주장에 대해 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궁지에 몰린 정부·여당이 철 지난 사드 문제를 다시 꺼내 ‘물타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사드가 정상 작동했다고 강조해 왔다.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에 있었던 한 의원은 “사실은 전혀 없고 의혹 제기만 한다”며 “오염수 방류에 쏠린 국민 눈을 돌리려는 의도 아니냐”고 했다. 다른 민주당 핵심 관계자도 “사드가 미치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라며 “2017년 이해찬 대표의 방중과 연결하는 건 억지에 불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