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모두 발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13일 의원총회에서 당 혁신위가 제안한 ‘전 의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논의했지만 반대 의견이 잇따르면서 추인에 실패했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하루 전날인 12일 “(불체포특권 포기 제안을) 안 받으면 민주당 망한다”고 했다. 혁신위는 의총 결과에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민주당 상황은 국민의힘이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에 112명 중 100명 넘게 동참한 것과도 대비된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모두 발언에서 “간곡하게 제안한다. 혁신위가 제안한 1호 쇄신안을 추인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결의를 공식 선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혁신위의 애초 제안은 ‘모든 영장’에 대한 특권 포기였는데 박 원내대표는 ‘정당한 영장’으로 범위를 제한해 추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비공개로 진행한 의총에서 찬반 의견이 엇갈리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시간이 짧았다. 앞으로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혁신위가 지난달 23일 처음 불체포특권 포기를 제안하자 의총에서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지난달 30일과 이달 5일 열린 의총에서는 안건으로 올리지도 않았었다.

이날 의총에서는 “혁신위 첫 제안인 만큼 받아줘야 한다”는 찬성도 있었지만 “헌법상 권한을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 “검찰의 정치적 영장 청구에 대비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혁신위가 제안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고 한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돈 봉투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고 20명이 돈 봉투 받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누구한테 먼저 영장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포기가 되겠느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앞줄 가운데) 대표와 의원들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과 관련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불체포특권 포기는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표가 한 공약이었다. 한 중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 때는 아무도 반대 안 하더니 이제 와서 반대하는 건 내로남불이라 욕먹어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다른 의원은 “불체포특권 문제가 제기된 게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인데 왜 전부 떠밀려 포기해야 하느냐”고 했다.

민주당이 당 쇄신을 내걸고 출범시킨 혁신위의 첫 제안을 이날 거부하면서 “당과 혁신위 모두 앞뒤가 막힌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말이 나왔다. 혁신위가 스스로 제안을 거두어들일 수도 없고, 의원들이 제안을 수용하기도 어려워 “퇴로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은 “혁신위가 ‘서약서 제출’까지 요구한 것은 지나치다. 논의를 거듭한다 해도 서약서 제출까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혁신위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혁신위 제안은 변함없고 민주당의 혁신 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의총에서 통과 안 된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고 하루빨리 재논의를 희망한다”고 했다.

혁신위가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려 동력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혁신위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불체포특권 포기에 이어 2호 제안으로 ‘꼼수 탈당 방지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2020년 9월 제명됐다가 지난 7일 2년 10개월여 만에 복당이 허용된 김홍걸 의원에 대해선 침묵했다. 비례대표인 김 의원은 당시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잃지만 제명당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당 지도부와 합작한 ‘꼼수 탈당’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 관계자는 “혁신위가 사안마다 달리 기준을 적용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설득력이 있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