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3일 ‘노인 비하’ 논란 발언 나흘 만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제기된 사퇴 요구, 혁신위 해체 주장에 대해서는 “혁신 의지는 그대로 간다”며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노인 비하’ 논란을 잠재우려 이틀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대한노인회를 찾아 사과했지만, 사태의 불똥이 이재명 대표 체제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노인회장, 김은경 앞에 두고 '사진 따귀' - 김호일(오른쪽 끝) 대한노인회장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를 사과차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김은경(맨 왼쪽) 혁신위원장 앞에서 김 위원장 얼굴 사진을 손으로 때리고 있다. 김 회장은 노인 폄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김 위원장을 향해 "정신 차리라"고 했다. /이덕훈 기자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한 발언으로 어르신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앞으로 더욱 신중하게 발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회견 직후 대한노인회를 찾아가 “어르신에 대해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산 적은 없었다”고 다시 사과했다.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은 “우리나라 1000만 노인을 대표해서 본인 보고 뺨이라도 때려야 우리 노인들이 분이 풀릴 것 같다”며 준비해둔 김은경 위원장 사진을 손으로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도 이날 대한노인회를 찾아 “민주당에서 가끔 막말로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는 발언이 나와서 당황스럽고 안타깝다”며 사과했다. 전날엔 한병도·이해식 의원과 양이원영 의원이 각각 방문해 머리를 숙였다.

김 위원장이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혁신위에 대한 민주당 내 여론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들어가 있는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는 김 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갔다고 한다. 한 호남 지역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혁신위 주장을 앞으로 의원들이 받아들이겠느냐”고 말했다.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라디오에서 “태생부터 한계가 있었고, 저렇게 설화가 생겼으니 빨리 해체해야 한다”며 “철이나 좀 들라고 해라”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혁신위가 제대로 된 혁신안을 내놓기도 전에 ‘심정지’ 상태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혁신위는 지난 2일부터 민주당 의원을 대상으로 ‘공천 룰 개정’ ‘대의원제 폐지’ 등 혁신 방향 관련 여론조사에 나섰는데,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위를 띄운 이재명 대표 체제도 위협받고 있다. 비명계 재선 의원은 “이번 사태로 이재명 대표 리더십은 치명타를 입었다”고 말했다. 1차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했던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천안함 자폭’ 주장으로 인선 당일 낙마했고, 김 위원장의 설화 논란까지 겹치면서 이재명표 혁신위가 당에 해만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라디오에서 “이재명 대표 리더십이 흔들흔들하고 있다”고 했다.

친명계 다선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김 위원장의 실언이나 실수는 당연히 이 대표에게 부담”이라며 “(김 위원장이) 지방 돌아다니며 당원 만나다가 사고가 계속 나는데, 당내 여러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고 했다. 친명계 안민석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서 “계속 이렇게 혁신위가 욕을 먹으면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이 대표) 사퇴 가능성이 제로로 보이지만 추석 지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총선 불출마 선언’을 꺼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친명계 당 지도부 관계자는 “혁신위 구성은 의원총회 결의 사항이었고 대표는 그걸 존중한 것인데, 혁신위 구성 자체를 이 대표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지난 1일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간 이 대표는 노인 비하 논란이나 혁신위와 관련한 입장은 내지 않고 있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당사자의 사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페이스북에 “참으로 기괴한 일은 이 대표가 잠수를 탔다는 사실”이라며 “우리 당 같으면 이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벌써 중징계를 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