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75)씨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개딸’ 등 야권(野圈) 강성 지지층의 표적이 됐다. 일부 과격 지지층은 “김씨의 책을 다 갖다 버리겠다”고 하고 있다. 정치권과 문학계에선 20여 년 전 소설가 이문열(75)씨의 ‘홍위병 논란’을 다시 보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김씨는 11일 이런 논란에 대해 “할 말 없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4일자 중앙일보 1면에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공교육과 그가 죽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기고문에서 그는 최근 서이초 교사의 자살을 초래한 학부모 악성 민원의 실체를 ‘내 새끼 지상주의’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 일가의 입시 비리를 거론하자 야권 지지층이 격분한 것이다.
김씨는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부인”이라며 “그는 아직도 자신의 소행이 사람들에게 안겨준 절망과 슬픔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는 조 전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등 기득권층의 ‘내 새끼 지상주의’를 지적하며 “이렇게 해서 공동체의 가치는 파괴됐고, 공적 제도와 질서는 빈 껍데기가 됐다”고 했다.
200자 원고지 22장가량 기고문에서 조 전 장관을 언급한 대목은 두 문장뿐이었다. 기고문 대부분은 ‘내 새끼 지상주의’가 공교육 현장과 교사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지적하며 한국 사회 전체의 각성을 촉구하는 데 쓰였다. 그럼에도 야권 지지층은 SNS에 김씨에 대해 “노망이 났다” “절필하라” “더위 먹었냐” “책을 다 갖다 버리겠다” 같은 인신공격과 폭언을 쏟아냈다. ‘토지+자유연구소' 이태경 부소장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있는 가족에게 저런 소리를 한다는 건 측은지심이 없다는 뜻”이라며 “맹자는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고 했다.
동명대 김동규 교수는 인터넷 칼럼에서 김씨를 향해 “정치적 공격의 본질을 무시하고 있다”며 과거 김씨가 전두환 정권에 부역하고 재벌을 찬양했다고 주장했다. 시인 김주대씨는 김씨를 ‘사자에게 물려 죽어가는 토끼에게 용감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야비하고 비열한 살쾡이’에 비유했다. 친야 인터넷 매체 ‘민들레’의 한 기자는 “조국 가족을 향한 난데없는 칼부림이 드러낸 김훈의 민낯”이라고 했다.
김씨는 최근 수년간 고 김용균씨 사건 등 산업 재해 문제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왔다. 또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린 장편소설 ‘하얼빈’(2022)은 문재인 전 대통령 추천 도서이기도 했다. “입맛에 맞을 땐 김씨를 찬양하던 사람들이 조 전 장관이 무슨 성역(聖域)이라도 되는 양 벌 떼처럼 달려들어 집단 린치를 가하는 모습이 꼴사납다”는 목소리가 진보 진영 내에서도 나온다.
이문열씨는 2001년 한 일간지 칼럼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를 추종하던 시민 단체들을 홍위병에 빗댔다가 분서(焚書)를 당한 적이 있다. 시민 단체 관계자들은 이씨 집필실 앞으로 몰려와 북과 꽹과리 시위를 하며 책 장례식까지 열었다. 당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이씨에게 곡학아세(曲學阿世)를 한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문학계에선 이번 김씨 논란이 당시와 겹친다는 말도 나왔다. 김씨는 11일 본지 통화에서 “정확한 상황을 나는 잘 모른다. 할 말도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조민씨 기소를 계기로 조 전 장관 일가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조 전 장관 가족이 조선 시대 무슨 사화(士禍)라도 일으켰느냐”며 “멸문지화를 시키니 윤석열 정권, 시원한가. 하늘의 노여움이 국가 폭력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검찰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검찰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당이 또 조국의 강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