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정부 질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주로 시행한다. 대통령제인 미국에서는 한국 같은 본회의장에서의 대정부 질문 없이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우리 국회의 비정상적 대정부 질문은 1948년 제헌국회에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세력이 타협한 결과다.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대신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대정부 질문을 국회법으로 보장했다. 이후 수십 년간 한국의 대정부 질문은 독재 정권 시절 야당의 합법적인 정부 견제 수단으로 활용됐다.
전문가들은 “이제 대정부 질문의 수명이 다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건전한 정부 견제도 없고, 정책 토론도 없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됐다는 것이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지금의 대정부 질문은 정치는 실종됐고, 전쟁 상태”라고 했고, 김성수 한양대 교수는 “정당들이 자신들의 ‘집토끼’를 품기 위한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5~8일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도 말싸움과 비난으로 끝났다. 민주당 박영순 의원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게 “쓰레기”라고 했고,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총선에) 출마하느냐”고 물었다. 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윤석열씨”라고 불렀다. 대정부 질문 마지막 날인 지난 8일에는 초등학생 40여 명과 일반인 70여 명이 이 모습을 지켜봤다.
정치권에서도 무용론이 커지고 있다. 이번 대정부 질문 사회를 본 민주당 소속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최악”이라고 했고, 질의자였던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도 “제대로 된 의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대정부 질문은 없다”고 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당리당략만 따르고 국민이나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질문은 없다”며 “대정부 질문의 개선이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지난 6일(현지 시각) 영국 국회에선 대총리 질문(PMQs·Prime Minister’s Questions)이 열렸다. 영국 제1 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를 포함해 의원 22명이 질의하고 리시 수낙 총리가 답변했는데, 40분 만에 마쳤다.
의원들과 총리는 대체로 필요한 질문과 답변만 일문일답식으로 했다. 정치 담론이나 정쟁보다는 정책 질의와 답변이 주를 이뤘다. 예컨대 영국 정부가 최근 개학을 앞두고 부실 콘크리트가 사용된 학교 100여 곳에 폐쇄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스타머 노동당 대표가 “2018년에도 (부실 콘크리트로 지은) 초등학교 지붕이 무너졌다”며 정부 대응을 지적했다. 그러자 수낙 총리는 “영국 내 2만2000개 학교 중 대다수는 이번 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이번 의회에서 학교 유지 보수 및 재건축 예산은 전년 대비 20%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수낙 총리가 답변할 때나 스타머 대표가 발언할 때 각 당의 의원들이 동조하거나 비난하는 소리를 내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상대편을 향해 심한 조롱이나 욕설은 하지 않았다. 의석은 자리에 앉은 의원들로 꽉 차 있었다. 좌석은 비좁았다.
반면, 지난 5~8일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은 하루에 11명의 국회의원이 나와 질의했다. 영국 대총리 질문에서 질의한 의원 수의 절반인데, 대정부 질문이 하루에 짧게는 4시간 30분, 길게는 5시간 30분가량 걸렸다. 자리를 지키는 의원은 300명의 10%인 30명 안팎에 불과했고, 상대방의 발언에 야유를 보내거나 국무위원과 말다툼을 벌였다. 한국은 1년 평균 세 차례 대정부 질문을 하고, 영국은 회기 중 매주 진행되는 제도적 차이가 있지만, 대정부 질문에 대한 두 의회의 차이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야유하니 한동훈 장관은 “지금 야구장 오셨냐”고 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하원은 회기 중인 경우 월~목요일에 개의하는 본회의에서 60분씩 대정부 질문을 한다. 독일 연방 의회는 회기 중 수요일마다 오후 1시에 60분간 진행된다. 일본은 대정부 질문 대신 국회 본회의나 참의원·중의원의 각 위원회에서 총리·각료에게 수시로 현안 질의를 한다. 이원집정제인 프랑스의 하원은 회기 중 최소 주 1회 이상 대정부 질문을 한다.
다만, 영국·독일은 개별 의원의 질문 수를 제한한다. 지난 6일 열린 영국 대총리 질문에서도 노동당 스타머 대표가 6개, 제2 야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스티븐 플린 의원이 2개의 질의를 했고, 나머지 의원은 1개의 질문을 했다. 프랑스도 의원 질문 시간을 2분으로 제한하며, 정부 답변 후 보충 발언을 최대 5분 할 수 있다.
한국 대정부 질문은 국회법상 의원 1명당 20분까지 발언할 수 있다. 현재는 의원당 13분으로 운영 중이지만, 의원 질의 시간이 길고, 국무위원 답변 시간은 질문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의원 1명과 국무위원의 설전이 30분 안팎 이어진다. 2003년 국회법에 규정된 대정부 질문의 ‘일문일답’ 원칙은 없는 조항이나 다름없다. 컴퓨터 추첨으로 질의할 의원을 선정하는 영국과 달리 한국은 원내 지도부가 분야별 질의 의원을 지목하고 사전 회의도 한다. 정당의 스피커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우리 국회를 찾은 외국 귀빈이나 견학을 온 학생들이 대정부 질문에서 국회의원·국무위원들의 싸우는 모습을 봤다는 기사는 단골 메뉴 중 하나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대정부 질문이 파행될 땐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2017년 문재인 정부 첫 대정부 질문의 고성은 오만 하원 의장이 지켜봤다.
전문가들은 “차라리 미국처럼 국회 상임위 활동을 강화하자”고 했다. 미국은 현안이 생기면 수시로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열고 정부 관계자 등을 불러 질의한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국의 대정부 질문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독재 정권을 견제하는 제도로서의 역할은 상실된 지 30년이 넘었다”며 “미국처럼 상임위 활동을 철저히 하면 된다. 여야 지도부의 세력 과시, 지지층에게 각인될 수 있는 장면 연출을 위한 대정부 질문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