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체포 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두고 사실상 ‘부결 지령’을 내리자 민주당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 관계자는 “부결이 되더라도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뒤집은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직접 부결을 요청한 체포안이 가결되면 이 대표의 지도력은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된다. 민주당 내분 역시 분당을 우려할 수준까지 치달을 전망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20일 이 대표 입장이 나오자마자 “체포안을 반드시 부결시키자”고 호응했다. 친명계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검찰 독재 저지 총력투쟁대회’에서 “야당 대표 단식에 조롱으로도 모자라 정치 검찰을 앞세워 칼끝을 겨누고 있다”며 “검찰 독재를 저지할 것”이라고 했다. 박범계 의원도 “기본권을 침해하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친명계 원외 인사는 “국회의원들이 내일 체포안을 반드시 부결시켜서 무도한 윤석열 정권에 반격하자”고 했다. 참석자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친명계는 그간 당론 부결을 주장해 왔다. 강성 친명 지지자 역시 “체포안에 찬성하는 의원들을 끝까지 색출,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전화·문자로 부결을 압박하고 있다. 부결 답변을 한 의원 명단을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살생부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상당수 비명계 의원도 표면적으로는 ‘부결이 맞는다’는 입장이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단식 중인 야당 대표에게 체포안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응수를 하고 있다”며 “국회 회기를 기다려서 노골적으로 검찰이 정치 행위를 감행했다”고 했다. 한 비명계 의원도 본지 통화에서 “검찰이 당의 분열을 노골적으로 획책하고 있다”며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물론 문제지만, 검찰의 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부결시키겠다는 의원이 상당수”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부결이 적절하다”며 사실상 부결을 의원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이를 당론으로 확정하지는 않았다. ‘방탄 정당’ 역풍을 염두에 둔 결정이다. 대다수 친명계 의원은 “단일 대오로 검찰의 야당 탄압에 맞서자” “부결은 단순히 이재명을 지키자는 게 아니라 삼권분립 수호 행위” 등 논리를 폈다. 한 참석자는 “충성 서약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반면 ‘당이 검찰 프레임에 갇혀 이 지경이 되는 동안 지도부는 뭘 했나’ ‘무슨 근거로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뒤집나’ ‘부결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방탄 정당이라고 만세 부를 일 있느냐’ 같은 비명계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21일 본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안 통과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다. 친명·비명 양 진영은 20일에도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각각 부결·가결을 설득했다. 친명계는 의원 130여 명은 부결 표를 던지겠지만 나머지 30여 명은 가결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대표(입원), 윤관석(구속), 박진(순방) 의원을 제외하면 표결 가능한 의원은 294명. 148명이 가결 표를 던지면 체포안이 통과된다.
국민의힘, 정의당, 여권 성향 무소속 의원 120명이 가결 표를 던지고 여기에 야권에서 28명이 이탈하면 체포안이 통과되는 셈이다. 지난 2월 이 대표 체포안은 찬성 139표로 재석 과반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시 169명 전원이 표결에 참여했는데도 반대표는 138표에 불과했다. 반란 표가 31명이나 나온 것이다. 친명계는 이날 “대표의 등에 칼을 꽂아서야 되겠는가”(박찬대 최고위원) 같은 발언으로 표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지지층의 ‘살생부’ 등 색출 압박에 이 대표 본인의 부결 요구까지 더해지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친명계 의원은 “무기명 투표소에선 인간의 본심(本心)이 나오는 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