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표결이 진행된 21일, 정치권에선 가결보다는 부결을 예상하는 전망이 다소 우세했다. 이 대표가 22일째 단식하며 지지층을 최고조로 결집시킨 상황에서, 검찰이 회기 내 구속영장을 청구한 행위 역시 야당 분열을 획책하는 ‘정치 개입’이라는 논리가 민주당 내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비명 의원들은 “이재명도 밉지만 윤석열 정부와 검찰이 더 밉다”며 부결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그러나 결과는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가결이었다. 이날 표결엔 재적 의원(298명) 중 295명이 참여했다. 이 대표(입원), 박진(순방)·윤관석(구속)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었다. 체포안 가결엔 출석 인원 과반인 148명 찬성이 필요한데 딱 1표가 더 나왔다.
국민의힘(110명)을 비롯, 그동안 체포안 찬성을 밝힌 정의당(6명)과 시대전환·한국의희망(각 1명), 여권 성향 무소속 2명이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면 찬성은 120명이다. 총 찬성이 149명인 것을 감안하면 민주당에서 29명이 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윤미향, 김남국 의원 등 야권 성향 무소속 6명과 기본소득당·진보당(각 1명)이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고 가정할 때다. 기권·무효까지 포함하면 민주당에서 39명이 이탈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날 무효표 중엔 ‘가’ 옆에 희미한 점이 찍혀 있거나, 동그라미를 친 ‘㉮'를 기입한 용지가 있었다고 한다. 수기 투표 때는 투표용지에 한글이나 한자로 가(可) 혹은 부(否)만 표기하도록 돼 있다. 국민의힘에선 ‘가결이 사실상 151표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지난 2월 이 대표 체포안 때 찬성이나 무효·기권으로 이탈한 민주당 등 야권 30명가량이 이번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일부 친명계는 “가결 의원은 10여 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당장 친명계는 “우리 당 의원들이 가결 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양이원영) 같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체포안 가결의 결정적 이유로 이 대표의 전날 ‘부결 요청’이 꼽힌다.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본인이 직접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해 놓고 이를 뒤집은 데 대해 비명계에선 실망이 터져나왔다. ‘단식 목적이 결국 방탄이었나’ ‘정치인의 기본 신뢰를 저버렸다’ 같은 반응이었다.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메시지의 역풍이 생각보다 상당했다. 저게 나온 후에 어떤 심리적인 분당 사태로 갔다고 본다”며 “(의원들이) 깜짝 놀라는 분위기더라. 심한 표현은 ‘더는 당 같이 못 하겠다’는 얘기들도 했다”고 전했다.
“가결 의원들을 색출, 정치 생명을 아예 끊어버릴 것”이라고 협박했던 극성 지지층, 그리고 이를 방조하면서 사실상 이용했던 이재명 지도부에 대한 피로와 반감도 분출했다. 전날 의원총회에서 발언한 수십 명 의원은 대부분 친명계였고 ‘검찰 독재 반대’ 등 구호로 부결을 압박했다. 비명계는 공개 석상에선 침묵했지만 비밀 투표소에서 본심(本心)을 드러냈다. 이 대표와 함께 침몰할 수 없다는 이런 인식을 공유하는 비명 의원들은 이날 본회의가 임박한 시점에 ‘연말까지 당이 또 검찰에 끌려다니면 총선 필패’ ‘당을 위해 대표를 버리자’는 공감대로 단합했다.
여기에 친명 원외 인사들이 내년 총선을 노리고 잇따라 비명계 지역구를 파고 드는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도 작용했다. 실제 오후 2시 본회의가 시작되자 친명계에서도 ‘가결로 기운 것 같다’는 체념이 나왔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가 본인의 사법 리스크로 당을 검찰의 볼모로 만들어 버렸다”며 “당이 일시적 진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치의 기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존재했다”고 했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이재명 한 사람 살리려다가 당이 총선에서 다 죽는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부가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 아니겠는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