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1일 가결되면서 박광온 원내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이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조정식 사무총장과 사무총장 산하 정무직 당직자도 전원 사의를 표명했다. 비명계 원내지도부와 친명계 사무총장이 함께 책임을 진 것이다.

민주당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11시 20분 비공개 의원총회를 마치고 기자에게 “모든 상황에 책임을 지고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명했고, 이 시간부로 원내지도부는 총사퇴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원내대표 궐위 시 한 달 안에 의총을 통해 재선출하게 하는 당헌당규에 따라 차기 원내지도부를 선출할 일정을 정할 방침이다. 총선을 200일 남짓 앞두고 당내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친명·비명의 대결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민주 '침통' - 박광온(앞줄 오른쪽) 원내대표, 김태년(앞줄 왼쪽)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자 눈을 감거나 팔짱을 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이날 비공개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의총은 박광온 원내대표와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당내 의원을 성토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친명계 의원들이 “국민의힘과 협잡해 당대표를 팔아먹었다” “당원에 대한 배신”이라며 공격에 나섰다. 부결파였던 수도권 3선 의원은 “협잡꾼, 국민의힘과 손잡고 검찰에 대표 팔아먹은 것”이라고 했다. 한 의원은 “누구 하나 죽일 분위기였다”고 했다. 친명계에서 비명계인 박 원내대표의 대표 대행 체제를 막기 위해 끌어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친명계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같은 당 의원을 거친 말로 비판하고 나섰다. 김병기 수석 사무부총장은 페이스북에 “역사는 오늘을 민주당 의원들이 개가 된 날로 기록할 것”이라며 “이 대표의 자리를 찬탈하고자 검찰과 야합해 검찰 독재에 면죄부를 준 민주당 의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적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들은 가결표를 찍은 의원들에 대한 색출 작업에 나섰다. 일부 의원은 ‘부결’을 찍었다는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단식으로 입원 중인 서울 녹색병원에서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체포안 가결이 선포된 이후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에 들어갔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녹색병원에서 사실상 장기 농성전을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향후 영장 실질심사 결과에 따라 구속될 수도,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그동안 친명계 일각은 이 대표가 구속된다면 ‘옥중 공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다. 이 대표가 사퇴 대신 ‘옥중 공천’을 고수할 경우 비명계의 저항과 당의 분열이 불가피하다. 구속영장이 기각돼 이 대표가 복귀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당내 체포동의안 부결파와 원외 강성 지지층은 ‘피의 복수극’을 주장하고 있어 비명계와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야당 관계자는 “누구도 분당을 입에 꺼내지 않지만 분당까지 염두에 두고 당내 투쟁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친명과 비명 모두 (이 대표를) 대체할 수 있는 카드가 없는데 쉽사리 분당이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특히 비명계 구심점 역할을 할 원내 인사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또 민주당 의원 다수는 그동안 입을 모아 ‘분열은 총선 필패의 길’이라고 말해왔다. 한 중진 의원은 “가장 좋은 것은 이 대표가 자진 사퇴를 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 입장에선 영장 발부 여부와는 무관하게 당대표직을 유지한 채로 재판에 임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당내에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