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1985년 중대장 시절 군 책임을 덜기 위해 훈련 도중 박격포 오발탄으로 숨진 중대원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아 숨졌다고 조작했다는 의혹과 관련, 이 사건을 재조사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조차 “누구 주도로 사망의 원인이 왜곡·조작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낸 것으로 27일 나타났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친야(親野) 매체는 이를 ‘신원식 중대장이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사인이 조작됐다”고 주장한 진상규명위는 사고 당시 ‘불발탄 사고’ 결론을 최초로 낸 군 부대 조사 책임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출신의 일부 부대원 진술에만 근거해 사인이 조작됐다는 무리한 결론을 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혹은 지난 8월 말 신 후보자에 대한 국방장관 하마평이 나오던 시점,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가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과거 중대장 시절 훈련 중 포탄을 맞고 사망한 부대원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은 것으로 조작·은폐했던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1985년 사고가 38년 만에 다시 논란이 된 것은 당시 숨진 부대원의 동료였다는 조모씨가 2020년 9월 14일 진상규명위 진정 접수 마지막 날 “사인이 조작됐다”며 진정을 넣으면서 시작됐다. 그때까지 유족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 공천을 받아 전남 지역 지방선거 출마 경력이 있는 조씨는 오마이뉴스에 “그날 소주를 많이 먹었다. TV에 (신원식) 얼굴이 나왔다. 저XX는 군 시절에 나쁜 일 해놓고 큰소리 친다고 했다. 알아보니 군 진상규명위 진정 마지막 날이라 술 마시다 집으로 갔다”고 밝혔다. 당시는 신 후보자가 국회 국방위원 신분으로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의혹 관련 공세를 펼 때였다.

진상규명위는 2년간 조사 끝에 2022년 12월 “부대 지휘관 중 누군가의 주도로 사고 발생의 원인이 왜곡·조사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누구 주도로 사망의 원인이 왜곡·조작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별다른 반향이 없던 조사 결과는 지난 8월 신 후보자의 국방장관 하마평과 함께 친야 매체들이 보도하며 불거졌다.

진상규명위는 2년 간 사고 직접 목격자도 아닌 진정인 조씨가 사는 전남 지역으로 내려가 방문 조사를 하면서도, 사고 당시 ‘불발탄’ 결론을 낸 군 헌병 수사관은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 헌병 수사관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진상규명위는 보고서에서 “헌병대 수사관에게 참고인 조사를 위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했지만 지금까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조사한 사단 헌병 수사관 김모 예비역 준위는 통화에서 “오히려 자기들이 조사 일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내가 ‘병원 다니는 중이니 당신들이 와서 조사하든가, 아니면 날짜·장소를 정해주면 가서 조사에 응하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계속 ‘다음에 잡겠습니다’고만 하고 날짜를 잡지 않더라. 그러곤 끝인데 내가 왜 조사를 거부했다고 거짓말하느냐”고 했다. 그는 “근거도 없이 자기들이 부실 조사를 해놓고 오히려 내가 부실 조사 했다고 적시를 했다. 병사 사망사고의 진실을 왜곡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며 진상규명위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일부 부대원들이 박격포탄과 유탄의 위력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35년 전 기억에만 의존한 진술을 했다는 지적도 있다. 진상규명위는 “(숨진 부대원이) 불발탄을 밟았다면 발목이 절단돼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일부 부대원의 진술을 토대로 사인이 불발탄(40mm 고폭탄)을 밟은 게 아니라 박격포 오발탄에 맞은 것이라 결론냈다.

하지만 육군본부 군사경찰실 자료에 따르면 ‘40mm 고폭탄 불발탄’을 밟아 폭발해서 발목 절단상을 입은 사고 사례는 지금까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 후보자는 “40mm 유탄의 위력은 수류탄의 3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밟았다고 해서 발목이 절단되는 사례는 없다”며 “진상규명위 조사대로 수류탄 위력의 5배인 박격포에 맞았다면 발목은커녕 시신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해 즉사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사 기록에 따르면 숨진 부대원은 폭발 사고 이후에도 관등성명을 댈 정도로 의식이 있었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 도중 숨졌다. 특히 같이 훈련을 받던 좌우 4~5m 거리에 있었다던 부대원 중 누구도 다친 이가 없었다. 군에 따르면 40mm 유탄의 살상 반경은 3m다. 이에 반해 60mm박격포탄의 살상 반경은 15~25m다. 신 후보자는 “오발사된 박격포탄이 떨어져 해당 부대원이 숨졌는데 주변 살상 반경 내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은 황당함의 극치”라고 했다.

진상규명위가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국방조사본부 법의학연구소 폭발물 전문가 역시 “(부대원들의) 진술에 과장이 있어보이고, 증거가 없으므로 ‘박격포 오폭사고’인지 ‘40mm 고폭탄 사고’인지는 판단 불가”라면서도 “근접 거리에서 박격포 피폭시 심각한 신체 훼손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신 후보자가 공개한 당시 훈련도. 신 후보자는 "박격포 표적은 보병 공격 진행 방향과 전혀 다른 2시 방향의 훨씬 먼 거리에 위치했기 때문에 중간에 낙탄해도 보병 머리 위로는 안 떨어진다"며 "보병 공격개시선 출발 후에 보병 머리 위로, 그것도 사거리를 짧게 해서 박격포를 실사격했다는 진술 자체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신원식 의원실

일부 부대원은 진상규명위 조사에서 “박격포에서 쏘아진 포탄은 육안으로 날아가는 모양이 또렷하게 보인다” “궤적을 육안으로 똑똑히 봤다” “꽝 해서 바라보니 박격포가 사고자 발밑에 떨어진 걸 봤다”고 진술했는데 이 역시 35년 전 불완전한 기억에만 의존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군에 따르면 M2, M19 60mm 박격포의 포구 발사 초속은 158m/초다. 육안으로 박격포탄 궤적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한 부대원은 “(숨진 부대원의) 군복이 거의 벌집이 돼 있었다”고 했고, 진정인 조씨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판초우의가 폭폭폭 뚫렸더라”고 했다. 이는 오히려 박격포탄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진술이라는 게 신 후보자의 주장이다. 박격포탄의 살상 원리는 불규칙한 쇳조각 파편이 튀어나와 신체를 절단한다. 반면 40mm고폭탄은 무수한 쇠구슬 파편이 나와 다발성 파편상을 만들기 때문에 구멍이 난다는 것이다.

1985년 사건을 최초 조사한 헌병 수사관의 ‘중요 사건 보고’ 역시 “사체에 맹관된 파편의 모양, 판초우의에 생긴 파편 구멍의 모양이 40mm 고폭탄 파편 모양과 같다”고 돼있다. 당시 헌병 수사관 김모 전 준위는 “현장의 파편, 사고자가 착용했던 판초우의에 뚫린 구멍의 모양, 사고자 피부 표면을 뚫고 들어간 파편의 흔적, 사고자 신체에 박혀있는 파편 등이 40mm고폭탄 파편 모양과 같았다”며 “또 군의관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의 내용(족부, 우측 대퇴부, 우측 흉부, 우측 액와부에 다발성 파편상)을 종합하니 의문의 여지 없이 40mm 불발탄 사고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한 의원은 통화에서 “양쪽 주장만 있을뿐 팩트가 없어서 별 내용이 없는 의혹이라는 판단”이라며 “(박격포 오발탄 사고라는) 당시 여러가지 진술이나 정황 증거가 좀 맞지 않다고 본다. 진짜 문제가 있다면 진작 했어야지 38년간 뭘 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신 후보자는 “진상규명위는 공식 수사보고서와 사망진단서, 지휘관들이 일관되게 40mm 고폭탄 불발탄 사고임을 진술했음에도 160명 중대원 중 10여명의 35년 전 진술만을 근거로 사인 조작 결론을 내렸다”며 “당시 사고로 정신 없던 27세 중대장이 어느 겨를에 사단에서 내려온 헌병 수사관과 군의관을 모두 조작에 가담시켜 사인을 조작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신 후보자는 오마이뉴스와 진정인 조씨에 대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