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이재명 대표가 추석날 제안했던 영수회담을 수용하라며 “임기 500일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를 범죄자 취급하며 만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은 과거 영수회담에 대해 전근대적 발상, 권위주의 산물이라 했었다”며 “뜬금없는 영수회담 제안할 게 아니라 재판에 충실히 임하라”고 했다. 이에 민주당이 “막가자는 거냐, 영수회담 제안이 이렇게 모욕받을 일이냐”고 반발하면서 여야는 종일 치고받았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단식 중단 뒤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이 대표는 추석날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님께 민생 영수회담을 제안드린다”며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조건 없이 만나 민생과 국정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은 신속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뒤 처음 낸 메시지다. 이 대표는 작년 8월 대표 취임 때부터 줄곧 영수회담을 주장했다. 이소영 의원은 2일 CBS 라디오에서 영수회담 제안 횟수에 대해 “아마 한 7~8번 되는 걸로 안다”며 “이렇게 여러 번 제안한 것도 기네스감일 텐데 이렇게 여러 번 무응답 또는 거절당하는 것도 기네스감”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 대표가 영장 기각 직후 바로 영수회담을 제안한 것을 두고 “이 대표가 당내 주도권 회복을 위해 자기 정치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가 곧 퇴원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현장을 찾을 거란 전망도 있다.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보란 듯이 영수회담을 제안한 건 ‘사법 리스크 이제 다 털었으니 만나자’는 뜻”이라며 “이번 영장 기각을 무죄 판결 받은 것처럼 받아들이는 강성 지지층에 호응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이 대표도 실제 영수회담 성사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정치적 목적이 더 크다는 얘기다. 최재성 전 정무수석은 KBS 라디오에서 “지금은 영수회담 요청하고 이럴 상황은 아니다. 국민들이 그 정도는 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영수회담 제안에 “무죄 코스프레”, “얄팍한 꼼수”라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민주당 스스로 예전에 영수회담이라는 건 없다고 해놓고 갑자기 왜 구시대 유물을 들고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대표의 ‘구시대 유물’ 발언은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019년 5월 문재인 정부 때 당 수석대변인으로 있으면서 했던 말을 소환한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하자 “영수회담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제왕적 총재가 있을 때 했던 것이라 우리로서는 그런 방식은 아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새누리당을 그렇게 운영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당이 아니다”고 말했었다. 이에 대해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는 민주당식 내로남불”이라고 했다.
김기현 대표는 “여야 대표가 만나 대화하자고 그간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묵묵부답이던 사람이 엉뚱한 데 가서 엉뚱한 말을 한다”며 “번지수 제대로 찾으라”고도 했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만나자고 할 게 아니라 김 대표의 여야 대표끼리 만나자는 제안부터 응하라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피의자 신분인 이 대표와 대통령이 만나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