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개표에서 11일 오후 11시 30분 기준 더불어민주당의 진교훈 후보가 두 자릿수 포인트 격차로 크게 앞서며 승리를 확정하자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폭정과 민생 파탄에 대한 심판”이라며 “야당과 협치에 나서라는 국민의 명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진교훈 후보의 선거 상황실은 투표가 끝나는 오후 8시가 되기 전부터 당 지도부가 속속 도착하며 북적였다. 최종 투표율이 48.7%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보궐선거라 투표율이 낮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있었지만 여러분이 너무 열심히 뛰어줘 50% 가까운 투표율을 올렸다”며 “고맙다”고 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의 제안으로 “진교훈 파이팅” 구호도 외쳤다. 이재명 대표는 진 후보의 승리에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 위대한 승리이자 국정 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라고 했다.
하지만 당 분위기는 “이 기세를 내년 총선까지 끌고 가자!”며 이날 하루 종일 들뜬 분위기였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 시작부터 “이기는 건 당연하고 최대한 표 차를 벌려 승리하자”며 “구청장 한 명 새로 뽑는 선거가 아니라 독재 정권 심판 선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현장을 가 본 의원들 모두 분위기가 완전히 우리 당으로 쏠린 걸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며 “크게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선거 프레임을 크게 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친명 일색 지도부를 구성한 뒤 치른 첫 선거에서 크게 이기면서 앞으로 이재명 대표의 당내 주도권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번 선거 기간 대부분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은 이 대표가 지난 9일 퇴원길에 지팡이를 짚고 유세 현장에 나타난 뒤부터 “지팡이 투혼이 선거 압승을 이끌었다”고 했다. 개표에서 진 후보가 앞서가자 친야 성향 온라인 게시판에는 “용산이 벌벌 떨고 있다” “이 대표가 대통령과 대결에서 완승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민주당에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이제 그만 고집을 꺾고 이재명 대표와 영수회담에 나서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재명 대표가 추석날 재차 제안했던 ‘민생 영수회담’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친명계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범죄 피의자라 안 된다더니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선거에서 야당과 대화에 임하라는 민심까지 확인됐다”며 “윤 대통령에게 더 이상 제1야당 대표와 만나는 걸 거부할 명분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번 선거 승리에 도취되면 민주당에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비명계의 이원욱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에 이기면) 당장 지도부 권한을 강화하는 데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페니실린(항생제) 주사를 맞은 격이 돼서 오히려 당이 변화를 선택하지 않고 현재 체제에 안주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면 총선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비명 의원들은 이번 선거 결과로 내년 총선을 낙관해선 안 된다고 했다. 강서구는 작년 7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이겼지만 오랜 기간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된 곳이기 때문이다. 강서구 국회의원 3명 전원이 민주당 소속이고, 지난 대선 때도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다. 보궐선거는 이겼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것이란 말이 나오고, 구속을 피해도 이 대표는 앞으로 거의 매주 재판을 받아야 한다. 비명계의 한 중진 의원은 “이길 곳에서 이긴 것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며 “당대표 사법 리스크로 당이 분열되고 위기인 상황에서 바뀐 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