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17일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아내 김혜경씨의 ‘법인 카드 유용’ 의혹에 대해 한 발언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법인 카드 유용 의혹을 처음 폭로한 제보자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국민의힘을 막아서는 등 총력 방어전을 펴고 있는데, 같은 당 김 지사가 의혹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기 때문이다. 작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김 지사가 전임자였던 이 대표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생긴 불편한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말도 나왔다.
김 지사는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의 경기도 국감에서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취임 이후 법인 카드 사용에 대해 자체 감사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감사를 하고 수사 의뢰했다”고 답했다. 정 의원이 김혜경씨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법인 카드 감사’라고만 했는데도, 김 지사는 김씨 사건을 상정하고 답한 것이다. 김 지사는 이어진 질문에 “감사 결과 최소 61건에서 최대 100건까지 사적 사용이 의심된다”며 “그래서 업무상 횡령·배임으로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감사는 제가 취임하기 전 이미 다 이뤄졌다”고도 했다.
김혜경씨의 법인 카드 유용 의혹은, 이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시절 아내 김씨가 비서 배모씨를 시켜 초밥, 샌드위치, 과일 등 사적 물품을 관사나 자택으로 사 오게 하면서 경기도 법인 카드를 썼다는 것이다. 배씨는 김씨가 당 관련 인사들과 한 오찬 비용을 경기도 법인 카드로 결제한 혐의 등으로 작년 8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김씨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김 지사의 발언에 민주당 친명 진영에서는 “뜨악했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한 친명 의원은 18일 통화에서 “대표가 검찰에 맞서 전쟁 중인데 김 지사 말하는 걸 보면 전혀 감싸주려는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며 “비서 배씨가 유죄 선고받은 금액이 지금 7만원인가 그런데 김 지사가 ‘사적 사용이 100건이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의원도 “부총리 출신인 김 지사가 국정감사 초보도 아닌데 ‘수사 지켜보자’는 정답을 놔두고 다른 얘기를 한 건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단순한 ‘말실수’ 차원은 아니라는 뜻이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이 대표로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대표 팬 카페인 재명이네마을에는 “누구 덕에 지사 됐는데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친다” “대표에 대한 배신은 정치생명 죽음”이라는 험한 반응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경기도는 18일 해명 자료를 내고, 김 지사의 발언은 작년 4월 취임 전에 끝난 감사 결과를 말한 것뿐이라고 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김 지사가 국감에서 말한 내용은 경기도 홈페이지에 이미 다 공개돼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경기도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감사보고서에는 사건 당사자 이름은 물론 유용 건수나 금액 등 모든 정보가 비공개 처리돼 있었다. 김 지사가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사적 사용 61~100건’도 알 수 없었던 내용인 셈이다.
민주당 안에선 이번 논란 배경에 작년 지방선거 이후 계속된 김 지사와 이 대표의 껄끄러운 관계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 지사는 작년 6월 당선 뒤 인수위 때부터 이 대표 측이 추천한 인사들을 쓰지 않았고 정책 면에서도 이 대표가 추진한 것들을 중지하거나 이름을 바꾸는 등 ‘이재명 지우기’를 진행했다. 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김 지사가 이 대표를 경쟁자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일이 생긴 것 아니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