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불법 유용 의혹’을 공익 신고했던 전직 경기도 공무원 조명현(가운데)씨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가 작년 1월 공익 신고를 한 뒤 이름과 얼굴을 공개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왼쪽은 국민의힘 장예찬 최고위원./이덕훈 기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17일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아내 김혜경씨의 ‘법인 카드 유용’ 의혹에 대해 한 발언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법인 카드 유용 의혹을 처음 폭로한 제보자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국민의힘을 막아서는 등 총력 방어전을 펴고 있는데, 같은 당 김 지사가 의혹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기 때문이다. 작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김 지사가 전임자였던 이 대표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생긴 불편한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말도 나왔다.

2023년 10월 17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법카 사적사용과 관련해 "법카는 수사의뢰를 했고 사건 배당이 됐기 때문에 수사 차원으로 넘어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지사는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의 경기도 국감에서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취임 이후 법인 카드 사용에 대해 자체 감사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감사를 하고 수사 의뢰했다”고 답했다. 정 의원이 김혜경씨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법인 카드 감사’라고만 했는데도, 김 지사는 김씨 사건을 상정하고 답한 것이다. 김 지사는 이어진 질문에 “감사 결과 최소 61건에서 최대 100건까지 사적 사용이 의심된다”며 “그래서 업무상 횡령·배임으로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감사는 제가 취임하기 전 이미 다 이뤄졌다”고도 했다.

김혜경씨의 법인 카드 유용 의혹은, 이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시절 아내 김씨가 비서 배모씨를 시켜 초밥, 샌드위치, 과일 등 사적 물품을 관사나 자택으로 사 오게 하면서 경기도 법인 카드를 썼다는 것이다. 배씨는 김씨가 당 관련 인사들과 한 오찬 비용을 경기도 법인 카드로 결제한 혐의 등으로 작년 8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김씨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17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뉴시스

김 지사의 발언에 민주당 친명 진영에서는 “뜨악했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한 친명 의원은 18일 통화에서 “대표가 검찰에 맞서 전쟁 중인데 김 지사 말하는 걸 보면 전혀 감싸주려는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며 “비서 배씨가 유죄 선고받은 금액이 지금 7만원인가 그런데 김 지사가 ‘사적 사용이 100건이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의원도 “부총리 출신인 김 지사가 국정감사 초보도 아닌데 ‘수사 지켜보자’는 정답을 놔두고 다른 얘기를 한 건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단순한 ‘말실수’ 차원은 아니라는 뜻이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이 대표로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대표 팬 카페인 재명이네마을에는 “누구 덕에 지사 됐는데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친다” “대표에 대한 배신은 정치생명 죽음”이라는 험한 반응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경기도는 18일 해명 자료를 내고, 김 지사의 발언은 작년 4월 취임 전에 끝난 감사 결과를 말한 것뿐이라고 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김 지사가 국감에서 말한 내용은 경기도 홈페이지에 이미 다 공개돼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경기도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감사보고서에는 사건 당사자 이름은 물론 유용 건수나 금액 등 모든 정보가 비공개 처리돼 있었다. 김 지사가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사적 사용 61~100건’도 알 수 없었던 내용인 셈이다.

민주당 안에선 이번 논란 배경에 작년 지방선거 이후 계속된 김 지사와 이 대표의 껄끄러운 관계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 지사는 작년 6월 당선 뒤 인수위 때부터 이 대표 측이 추천한 인사들을 쓰지 않았고 정책 면에서도 이 대표가 추진한 것들을 중지하거나 이름을 바꾸는 등 ‘이재명 지우기’를 진행했다. 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김 지사가 이 대표를 경쟁자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일이 생긴 것 아니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