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1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인 교수는 “한국 정치는 국가 수준에 비해 발전을 너무 못 했다”며 “전라도 말로 어문 짓거리(엉뚱한 일)만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이덕훈 기자

인요한(64·존 린튼) 연세대 의대 교수는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91년부터 32년간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 교수의 가문은 구한말부터 4대째 한국에서 선교·의료·교육 활동을 펼쳐 왔고, 이 공로로 2012년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됐다. 인 교수는 한국 정치에 대해 “전라도 말로 어문짓거리(엉뚱한 일)만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여당에는 국민 눈높이로 내려올 것을, 야당에는 북한에 대한 착각을 버려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민의힘 영입설에 대해 인 교수는 “만약 정치를 하게 된다면,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 8월 국민의힘 강연에서 휠체어를 탄 이종성 의원에게 무릎을 꿇고 악수를 해 화제가 됐습니다.

“강연 때 제가 의원들에게 엄청 욕을 했어요. ‘나라가 먼저다. 정쟁하지 마라’고 했어요. 젊은 세대는 정쟁에 지쳤어요. 강연 끝나고 국민의힘 국회의원 한 분이 주차장까지 와서 ‘우리가 못한 이야기를 다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도 아는 거지. 국민이 보기에 정치가 엉뚱한 일만 해요. 전라도 말로 어문짓거리(엉뚱한 일)만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무릎 꿇은 게 화제가 됐다고요? 그날 의원에게 구급차 관련 법 좀 고쳐달라고 부탁했어요. "

구급차 법 개정도 해결 못 하는 정치

-어떤 부탁인가요.

“지금 한국 구급차에선 심폐소생술을 못해요. 차 길이가 너무 짧고 디자인이 엉망이에요. 사람 머리 뒤쪽에서 삽관을 해야 하는데 장치를 넣을 공간이 안 나와요. 법을 고쳐야 하는 사안이라 내가 민주당, 국민의힘 의원 여러 분에게 졸랐는데 바뀐 게 없어요. 무릎 꿇어서 감동했다는데, 뭔 소린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면 상대 눈높이를 맞추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정치가 국민에게 실망만 안깁니다.

“정치는 국가 수준에 비해 발전을 못했어요. 소모전처럼 싸우기만 하지 않습니까. 아까 구급차 이야기를 했지만 이런 민생 문제마저 해결하지 못하는 건 심각합니다. 한국말로 타협이라고 하면 상대방에 지는 뜻한 뉘앙스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타협이 잘 안 돼요. 국회의원들 싸우는 거 괜찮아요. 다만 국민이 바라는 건 싸우고 절충안을 갖고 나오라는 것 아닙니까.”

-저출산 등 국가 과제는 많습니다.

“대한민국 대단한 나라입니다. 우리만 자길 과소 평가하고 있어요. 제가 인도적 지원으로 29번 북한을 갔다 왔는데 인천이나 김포에 내리면 갑자기 눈물이 흐르고 땅바닥에 뽀뽀를 하고 싶어져요. ‘우리 조상님들이 이 땅과 자유를 지키며 한국 사람과 같이 살았구나’ 싶은 거죠 . 개화기 때 외국 선교사들이 감동받은 게 있어요. 서민들이 나라를 그렇게 사랑하더라는 거예요. 한국인의 애국심, 동정심 세계 최고예요. 이렇게 똑똑한데 서로 견제하고 싸워요.”

좁은 나라서 지역감정, 이제 멈춰야

-순천 출신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들었습니다.

“오! 우주의 중심 순천. 사랑합니다. 제가 80년 광주에서 시민군 통역해 주는 소위 ‘급진 진보’였어요. 좌파는 아니고 ‘이 땅에 민주주의가 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다 전두환 시절엔 2년간 경찰이 따라다니고 엄청 고생했어요. 한번은 김대중 대통령과 독대를 했는데 제가 ‘전두환 모가지 확 잡아야죠’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인 원장, 보복이란 게 몹쓸 것이여’ 이랬어요. 그날 만델라(전 남아공 대통령) 강의를 30분 받았어요. 김 대통령이 취임식 때 전두환, 노태우를 앉혀 놓은 것 보고 한 번 더 깜짝 놀랐어요.”

-그 이후 민주당 정부는 어땠습니까.

“제가 사랑했던 민주당에 대해 인식이 바뀐 건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입니다. 노 대통령에게 15분 강의한 적이 있어요. 노 대통령이 ‘우리가 잘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님, 제가 이북 각 도에 다 들어가 봤습니다. 무지무지 가난합니다. 우리를 상대하려면 가진 게 없습니다. 제가 그들 입장이더라도 핵을 만듭니다’라고 했어요. 얼굴이 벌게지면서 담배를 물고 등을 돌립디다. 광주항쟁 때 한국에서 쫓겨나는 줄 알았는데 그때도 쫓겨날까 걱정했습니다. 이게 노무현, 문재인 정권의 착각이에요. 북쪽보다 남쪽의 이런 로맨틱한 생각이 문제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어떻습니까.

“여당의 경우 조금 더 다양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낙동강 근처에 머물러 있어요. 국민의 눈높이로 더 내려오라고 하고 싶네요. 정부 정책의 방향은 맞는다고 봅니다. 다만 방법론이나 전달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는 자동차 배터리든 반도체든 화끈하게 요구해서 많이 얻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미국과 가까워졌는데 실속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말이죠.”

-남북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개인적인 의견으로 조선 사람들끼리 일대일로 앉아서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상황은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관계에서 실패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친 것 같습니다.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정권을 싫어해도 북한 주민까지 미워해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국민통합도 더딥니다.

“아이고, 제가 아직도 광주에 내려가면 눈물이 나요.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고, 빨갱이 아니냐는 분이 여전히 계시는데, 당시 시민군 대표 연설을 제가 통역했습니다. 연설 첫마디가 ‘우리를 빨갱이라고 그래서 미치겠다. 우리 애국가 부르고 매일 반공 구호 외친다’였어요.”

-광주 정율성 공원은 어찌 보십니까.

“대한민국 건국 전에 독립운동 했던 분들은 이념을 넓게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가담해 우리를 괴롭힌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리스트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북한 군가를 만든 사람을 광주에서 기리는 건 광주 사람을 오해받게 만드는 일입니다. (공원을 추진한) 광주시장이 잘못했다고 봅니다.”

북한 주민까지 미워해선 안 돼

-국민의힘에서 영입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과거에도 출마 제안을 두 차례 받았습니다. 다만 정치를 하게 된다면 민주당에서 경상도 대통령 2명 배출했으니까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어요. 이 좁은 나라 안에서 지역 감정이 왜 있나요. 이제 정말 멈춰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희생했습니다. 백선엽 장군 같은 분도 계시고, 항일 투쟁, 광주 항쟁까지.”

-전라도 대통령, 본인을 염두에 두신 말인가요.

“아니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이미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인요한

1959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구한말부터 선교·교육·의료 봉사를 해온 린튼가(家) 자손이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은 1895년 조선을 찾아 선교·교육 사업을 펼쳤고, 그의 딸과 결혼한 윌리엄 린튼(인돈)이 인 교수의 할아버지다. 아버지 휴 린튼(인휴)은 6·25에 참전했고, 인 교수의 외삼촌도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1987년 한국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1991년부터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2012년 특별귀화 1호로 한국 국적을 받았다. 의료 지원을 위해 29차례 방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