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64) 위원장의 국민의힘 혁신 작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4대에 걸쳐 한국과 인연을 맺어온 미국 선교사 집안 출신 의사로서 전남 순천을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는 인 위원장. 그는 이 캐릭터를 최대 자산으로 혁신위의 절반을 여성·청년으로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과 사사건건 감정적으로 충돌했던 이준석 전 대표 등 비윤계에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며 두 팔을 벌렸다. 인 위원장은 오는 2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핼러윈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도 사실상 여권의 ’얼굴’로 참석한다.
이런 여당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의 표정은 복잡하다. 친명계는 인요한 혁신위가 금방 동력을 잃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최근 인 위원장에게 “김기현 사장을 바지사장으로 이야기한다면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바지전무 정도 된다”고 했다. 김 대표가 인 위원장에게 전권(全權)을 준다고 한 데 대해서도 “전권이 있어야 전권을 주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윤 대통령에게 있는 전권을 어떻게 김 대표가 인 위원장에게 줄 수 있겠느냐는 말로 해석됐다.
국민의힘 혁신위 인선에 민주당은 “공천을 노리는 이들의 집합소”라며 폄하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강선우 대변인은 27일 “혁신위의 면면은 혁신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들기 충분하다”면서 “총선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공천을 노리는 이들이 무슨 혁신을 한다는 말인가, 감히 윤석열 대통령에게 ‘혁신’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강 대변인은 “혁신은 용산을 향한 거침없는 쓴소리 없이 불가능하다. 당의 변화를 요구해 온 비윤 인사는 단 한 명도 보이질 않는다”며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윤희숙 전 의원 등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했다.
친명계에서도 여당 혁신위를 깎아내리는 언급이 계속 나왔다. “비윤이 빠진 ‘비운의 혁신위’”(정청래) “인선 발표가 나고 보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다행”(장경태) 같은 반응이다. 친명계는 국민의힘 혁신위에 박성중·김경진·오신환 등 전현직 여당 의원들이 포함된 것을 두고 “구태의연한 인선”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 내부에선 ‘인요한 혁신위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해선 결코 안 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야당 관계자는 “수도권 유권자들이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남성·영남·노인이라는 국민의힘 정체성이 혁신위원 인선으로 탈색되고 있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인 위원장 스스로도 여성과 청년을 중용한다는 방침을 수차례 밝히면서 이를 인선까지 밀어붙였다. 당대표·원내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 언론의 주목을 받는 당4역이 모조리 무채색 양복을 입은 장년 남성이었던 여당 이미지를 단번에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전·현직 원내대표 간담회 사진은 과거 국민의힘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는 당 안팎의 반응이 나왔다. 한 당 관계자는 “전원 50대 이상 남성이 전원 어두운 정장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게 민주당의 이미지로 굳어버리면 큰일”이라고 했다. 그간 민주당은 최고위원 선출이나 주요 당직자 인선 때마다 여성·청년 비율을 국민의힘보다 훨씬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미지 혁신 경쟁’에서 여당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당 곳곳에서 감지된다.
인 위원장의 혁신이 진행될수록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 흑(黑)역사가 재조명될 수 있다는 점도 민주당의 걱정거리다. 야당이 인요한 혁신위를 견제할수록 김은경 혁신위의 온갖 실책이 소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명계인 이원욱 의원은 여당 혁신위에 대해 “김은경 혁신위가 만들어졌을 땐 ‘혁신위원장이 어떻게 인선됐는지’ ‘친명 아닌지’ 이런 데에 언론이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언론에서 훨씬 더 긍정적인 평가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인 위원장이 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순천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민주당 안팎에선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다. 특히 인 위원장이 5·18 광주(光州) 민주화운동에서 시민군 통역을 맡았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여당의 극단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광훈 목사와 손잡았던 황교안 전 대표 덕에 승리했던 2020년 총선 전략을 반복하긴 어렵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지난 수도권 대승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못해서 뒤따른 결과”라며 “인 위원장 혁신위가 성공한다면 야당의 혁신 압박도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따른 친명·비명의 고질적 내분에 유권자 피로감이 극도에 달하고 있는 만큼, 야당에서도 총선 승리를 위한 ‘충격 요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