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면담을 나누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김기현 대표를 거명하며 ‘영남 스타’ 의원들의 서울 출마를 주장하자 “인 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강조한 김 대표의 처지가 난처해졌다. 29일 당 내부에서는 “당장은 아니라도 김 대표가 결단해야 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인 위원장은 지난 27일 첫 혁신위 회의를 주재한 후 언론 인터뷰에서 “TK(대구·경북)·PK(부산·경남) 스타들은 서울에서 출마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밝혔다. 인 위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는 대구의 5선 주호영 의원, 울산의 4선 김기현 대표의 실명도 거론했다.

당내에서는 인 위원장의 발언을 반기는 분위기였지만 겉으로는 다수의 영남 의원들을 의식한 듯 대부분 공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혁신위가 첫 타자로 김 대표를 겨냥한 것 아니냐”며 “인 위원장을 직접 임명한 김 대표가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지난 3월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신평 변호사는 28일 페이스북에 “김 대표가 버텨나가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정협의회서 핼러윈 참사 희생자 추모 묵념 - 29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제14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국민의힘 윤재옥(왼쪽부터) 원내대표, 김기현 대표,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 등 참석자들이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며 묵념을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실제 최근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김 대표에게 “총선 승리를 위해 수도권 출마 결단을 내려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서구청장 패배 직후 이철규 전 사무총장이 수도권 민주당 중진 의원의 지역구 출마 선언으로 김 대표와 함께 선거 패배 책임에 대한 배수진을 치려 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김 대표는 최근 선거 경험이 많은 당직자로 보좌관을 교체하는 등 총선 불출마나 험지 출마와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한 중진 의원은 “김 대표가 왜 수도권 출마를 못 받는지 모르겠다”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지금 자기 희생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영남을 제외한 당내 인사들은 인 위원장의 ‘영남 중진 수도권 출마론’을 긍정 평가하는 분위기다. 복수의 지도부 관계자는 “인 위원장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데 전권을 주겠다고 한 뒤 이제 와서 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지도부는 이준석 전 대표 등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는 혁신위의 1호 제안인 ‘통합 대사면’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다만 김 대표가 당장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인천을 지역구로 둔 윤상현 의원은 “영남 의원들이 수도권에서 당선될 만한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서울 출마는 험지가 아니라 사지”라며 “김 대표가 쉽게 결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무적으로 볼 때 수도권 출마든 불출마든 김 대표가 총선을 5개월 앞둔 현 시점에서 결단을 내리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많다. 한 최고위원은 “대표가 총선에 임박해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칼을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도 의미가 있다”며 “너무 일찍 다 써버리면 진짜 위기가 왔을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공천이 본격화되는 연말 연초가 되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표 측은 수도권 출마론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