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손뼉을 치지 않고 침묵으로 자리를 지켰다. 여야가 서로 존중하자는 이른바 ‘신사협정’을 맺으며 대통령 연설 중에 피켓 시위를 하거나 고성을 지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은 악수를 청하는 윤 대통령을 쳐다보지 않거나, 아예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작년 10월엔 검찰이 민주당사 압수수색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했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연단으로 이동하면서 가운데 통로 쪽 의석에 앉아있던 민주당 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대통령 시정연설 땐 국회의원 전원이 기립해 대통령을 맞고, 대통령이 의원들과 악수하면서 입장하는 게 관례다. 그러나 친명 성향의 이형석 의원은 앞만 응시하고 있다가, 윤 대통령이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쳐다보지 않고 손을 슬쩍 잡기만 했다. 이재명 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은 아예 윤 대통령을 쳐다보지 않았다. 강경파 초선인 김용민 의원은 윤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말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했다. 다만 김 의원 주변에 있던 의원들은 “김 의원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주위가 소란스러워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약 27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총 32차례 박수를 보내며 호응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 연설 중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통 취임 1년 반 93국과 142회 정상회담을 한 게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라는 글을 올리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모습을 보이면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으로 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엔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한 민주당 의원(이원욱·박용진·신현영 등)들을 욕하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반면 악수를 거부하거나 등 돌린 의원들에겐 “최고다” “너무 멋지잖아” 등 찬사가 쏟아졌다.
앞서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로텐더홀 계단에 도열해 ‘국민을 두려워하라’ ‘국정 기조 전환’ 등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었다. 본회의장 안에서는 진보당 강성희 의원만 ‘줄일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정연설에 미래를 준비하는 예산이 없어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불필요한 이념 전쟁이나 야당을 자극하는 내용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른 때보다 나았다고 평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