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3일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에 대해 “내년 총선 불출마나 수도권 출마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히자 당내에선 “예상보다 강력한 제안이 나왔다”는 평가가 많았다. 세부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영남 지역구인 당대표, 원내대표, 사무총장은 물론 대통령 측근 의원들까지 총선을 앞두고 거취를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수행실장을 지내고 경기 하남시에서 준비해 온 이용(비례) 의원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 성공에 필요해 당이 출마하지 말라면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당에서는 “추가적인 수도권 출마, 불출마 선언이 혁신위 성공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 위원장은 그간 수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영남권, 중진 의원의 수도권 출마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최근엔 대통령 측근 의원들로 혁신 대상을 확대했다. 인 위원장은 혁신안 발표 후 MBC에 출연해 “정말 대통령을 사랑하면 험지에 나와서 (뛰고) 그러지 않을 거면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6주(남은 혁신위 활동 기간) 안에 지도부나 중진에서 수도권 출마 선언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날 혁신위 회의에선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 등이 논의됐지만 찬반이 엇갈려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인 위원장이 “국민적 기대가 크다”며 내년 총선에서 당 지도부, 중진, 대통령 측근 의원 등 세 그룹이 희생해야 한다는 입장 발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인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영남권 중진 수도권 출마를 주장한 후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불만과 우려를 들었지만 흔들리지 않더라”라며 “본인이 국민의힘에서 출마할 가능성도 있는데,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인 위원장은 발표 전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와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 위원장도 “의논 안 했다”고 했다. 지도부 관계자는 “눈치 보지 않는 인요한식 쿠데타”라고 했다. 다만 인 위원장이 그간 수차례 공개적으로 영남 중진의 희생을 강조해 온 만큼 당대표 등 소수와는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혁신위는 수도권 출마·불출마와 관련해 구체 기준을 제시하진 않았다. 당 지도부는 유의동(경기 평택을) 정책위 의장을 제외하고 김기현(울산 남을) 대표, 윤재옥(대구 달서을) 원내대표, 이만희(경북 영천·청도) 사무총장 등이 ‘희생’ 대상으로 거론된다.
중진 의원과 관련해서 인 위원장은 지역을 특정하지 않은 채 “중진이라고만 해도 누군지 다 안다”고 했다. 여당 의원 중 3선 이상은 31명이다. 인 위원장이 ‘영남권 스타 의원’이라고 꼽은 주호영(5선·대구 수성갑) 의원을 비롯해 총리 후보·경남지사로 인지도가 높은 김태호(3선·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의원 등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날 인 위원장 권고의 핵심이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의 희생’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대선 이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장제원, 권성동, 이철규, 박성민 의원 등이 꼽힌다. 한 중진 의원은 “하태경 의원 등 비윤계도 수도권 출마로 희생하는데 대통령과 함께 국정 운영을 책임졌던 친윤 의원들이 지지율 하락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이날 수도권 출마·불출마 권고는 혁신위 공식 의결이 아닌 ‘정치적 권고’ 형식으로 나왔다. 당 지도부가 회의에서 가부를 의결할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한 지도부 인사는 “김기현 대표가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한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면 지도부가 진정성을 의심받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며 “인 위원장이 언급한 대상자 전원은 아니더라도 상징적인 일부는 불출마나 수도권 출마 선언으로 호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