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난 17일 대구 방문 이후 정치권에선 한 장관의 정치 데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야권에선 그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했고, 여권에선 그가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를 두고 물밑에서 여러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인터넷 일부에선 일종의 ‘팬덤’ 초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권에선 우선 한 장관에게 내년 총선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를 이끌도록 한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전체 지역구 의석 절반에 달하는 수도권 119석 중 현재 국민의힘은 17석”이라며 “수도권에서 국민의힘이 얼마나 의석을 얻느냐에 따라 총선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7%p 차로 참패한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이후 여권 내 수도권 위기론은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있다. 이를 위해 상징성 있는 서울 종로 등 전략 지역에 한 장관을 출마시켜 수도권 선거의 바람몰이 역할을 맡긴다는 것이다.
상징성 있는 ‘자객 공천’도 거론된다. 한 장관 특유의 ‘대야 투쟁’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이다.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1년 반 동안 거대 야당 민주당과 최전선에서 싸운 한 장관의 전투력을 총선까지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럴 경우 민주당에서도 선명성이 강한 정청래(서울 마포을) 의원이나 안민석(경기 오산) 의원의 지역구에 한 장관을 공천해 전체 판의 분위기를 바꾸는 방안이 거론된다.
한 장관을 비례대표 순번에 배치해 지역 선거 부담을 덜고 전국 선거를 지휘하게 한다는 구상도 있다. 선거 기간 한 장관을 특정 지역구에 묶어두지 않고 선거대책본부장 같은 직책을 맡겨 나머지 총선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전국 선거를 지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국민의힘 총선의 간판으로 한 장관의 전국적 지명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한 장관이 지역구 대신 비례대표로 가닥이 잡히고, 지난 총선 때 각종 ‘위성 정당’을 양산한 현행 선거법대로 내년 총선 역시 치러진다면 현재 거론되는 ‘조추송(조국·추미애·송영길) 신당’ 등에 한 장관이 맞불을 놓을 가능성도 있다.
총선에 나가지 않고 정부에 남아 대선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야권 관계자는 “한 장관이 돋보인 건 거대 야당에 맞서 홀로 싸웠기 때문”이라며 “한 장관이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300명 중의 한 명으로 위상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한 장관을 일찌감치 소모시킬 필요가 없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 대선의 윤석열·이재명 후보 모두 국회의원 경험이 없었다”며 “한 장관이 총선에 나가는 대신 내각에 남아 총리 등을 맡으면서 대선 직행 코스를 밟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장관의 대구행 이후 여야는 저마다 득실을 따지며 반응을 내놨다. 내년 총선 대구에 출마해 영남 기반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이준석 전 대표는 “한 장관은 일정한 부분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보니 언젠가 경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고 했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한 장관은 보란 듯이 보수의 심장 대구를 찾아 총선을 향한 들뜬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듯했다”며 “몰려든 촬영 요청에 3시간이나 사진을 찍었다는데 출마 생각에 무척이나 설렜느냐”고 했다. 대구에 이어 법무부 공식 일정으로 21일 대전, 24일 울산을 방문하는 한 장관은 이후에도 현장 일정을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