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적용할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기 위해 29일 오후 2시 30분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지만, 의총을 4시간여 앞두고 돌연 “내일로 순연한다”고 공지했다. 민주당은 국회 일정이 없는 29일보다는 본회의가 열릴 예정인 30일에 의총을 해야 의원 참석률을 높일 수 있어서 미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거제 개편을 두고 내홍이 격화되자 하루라도 시간을 벌어보자는 게 진짜 이유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논란의 중심엔 이재명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대선 때 ‘위성 정당 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대표 출마 때도 재차 공언했다. 하지만 지난 28일 이 대표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선거는 승부다”라며 “이상적인 주장으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있나”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총선에서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금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며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1석이라도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위성 정당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현행 연동형 비례 선거제를 유지한다면 지난 총선 때처럼 위성 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게 싫다면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각각 따로 뽑던 과거의 선거 방식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라며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게 이 대표의 입장”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이탄희 의원 등은 “과거로 돌아가는 건 퇴행”이라며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위성 정당을 포기해 명분을 지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뺀 채 현행 선거법을 처리했다. 당시 국민의힘이 위성 정당을 만들자 민주당은 강하게 비난하다 결국 같은 식으로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 이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대선 때 ‘위성 정당 금지’를 약속했지만, 다시 이를 뒤집으려는 시도가 이 대표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정의당으로부터 ‘최소한 과거로 되돌리지는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정의당이나 민주당이나 지향하는 바는 같다”면서도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나 수단, 방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쪽에선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진성준 의원은 CBS라디오에서 “민주당 의석을 헐어 다른 소수 정당이 국회에 많이 진출하게 하자는 주장은 자기모순이자 자가당착”이라며 “그분들은 왜 민주당에 소속돼 민주당 승리를 위해 노력하나”라고 했다.
이 대표 입장에 반대하는 건 이탄희 의원과 주로 비명계 의원들이다. 홍영표 의원은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라는 극단의 생각은 민주당의 길이 아니다”고 했다. 김종민 의원도 “이재명식 정치에 반대한다”고 했다. 비명계 의원들 모임인 ‘원칙과 상식’은 입장문에서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더 달겠다고 약속 따위 모른 체하면 그만이냐”고 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 대해 친명계에서는 “총선 지면 제일 먼저 이 대표 끌어내리자고 할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 일각에선 이 대표가 위성 정당을 만들든 과거로 제도를 되돌리든 민주당이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는 방식을 원하는 데 대해 “자기 사람을 비례 후보로 꽂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 스스로도 ‘총선 지면 이재명 정치생명도 끝’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으냐”며 “비례 명단에 자기 측근들을 심으면서 총선까지 이기면 이 대표로서는 최고이자 최선의 결과라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