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일 “제2, 제3의 이동관도 모두 탄핵시키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여권 인사들은 “탄핵의 진짜 목적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식물 방통위 만들기’였다는 걸 실토한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이 위원장의 사퇴보다는,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이 위원장 직무가 정지된다는 점을 노렸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내년 총선 때까지 문재인 정부 시절 만들어진 야권에 유리한 방송 등 언론 환경을 최대한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다면 국회는 탄핵권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 안에서도 “또 탄핵하면 국민이 곱게 볼 리 없다” “역풍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민주당은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 반드시 탄핵한다”며 비장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 위원장 사의 표명이 전해지자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당 최고위에선 홍익표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탄핵 절차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고민정·장경태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사표를 재가하면 “공범”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이렇게 ‘방통위원장 탄핵’에 매달리는 데 대해, 국민의힘에서는 “문재인 정부 동안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졌던 언론 운동장이 균형을 되찾는 게 싫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위원장은 취임하면서 편향된 공영방송의 정상화, 가짜 뉴스 퇴치 등을 공언했다. 이에 민주당은 “언론 장악 시도”라며 탄핵 사유라고 했다.
이 위원장이 탄핵돼 직무가 정지되면 당장 YTN 인수 승인, 연합뉴스TV의 사업자 변경 심사가 정지되고, 지상파(KBS, MBC, SBS)의 재허가 심사는 물론 종편 재승인 심사도 진행이 어렵다. ‘함정 취재’까지 등장한 인터넷 매체의 가짜 뉴스 논란도 방치된다. 국민의힘은 “이 모든 걸 탄핵으로 정지시킨 채 총선을 치르고 싶은 게 민주당의 본심일 것”이라며 “그걸 모르는 국민은 대한민국에 없다”고 했다.
이 위원장 사퇴로 탄핵이 무산되자 민주당은 “이동관이 도망갔다”고 비판하면서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얘기가 떠오른다”는 허탈한 반응이 이어졌다. “왜 지도부는 예측도 못 하고 번번이 헛방이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 안에선 이 위원장 사퇴에 대해 “예측 못 했다”고 했다가 “예측했다”는 반박이 오락가락 이어졌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당 회의를 마친 뒤 ‘수싸움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런 꼼수를 쓸 줄 잘 몰랐다”며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조금 비정상적인 국정 수행 형태라서 예상 못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는 오후에 열린 규탄 대회에서 “마치 일부 언론에서는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미 저희가 알고 있었고 우려하고 있었던 내용”이라고 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본회의를 앞두고 자청한 브리핑에서, 이 위원장 사퇴 가능성에 대해 원내 지도부와 긴밀히 협력했다면서 “결국 많은 이들의 힘으로 이 위원장을 끌어내렸다”고 했다.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 한 의원은 통화에서 “이 위원장이 총선 때까지 허튼 짓 못 하도록 탄핵 후 직무 정지로 묶어두려 했는데 실패했다”며 “이런 계획이 다 무산됐는데 이제 와서 ‘예측했다’고 하는 건 ‘정신 승리’나 다름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손준성·이정섭 검사 2인에 대한 탄핵안을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은 지난 9월 ‘2014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수사한 검사를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한 데 이어 이날 2명을 탄핵 검사 명단에 추가했다. 국민의힘은 “재판받고 수사받는 검사들을 탄핵하는 건 정치 탄핵”이라며 표결에 불참했다. 국민의힘은 “168석 막강 야당이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아닌 검사 2명 탄핵하겠다고 국회를 이 난장판으로 만들었으니 ‘막가파 탄핵당’이라 비난받아도 당연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