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4일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희생 혁신안’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국민의힘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10월 11일) 참패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 지도부는 혁신위가 이날까지 답변을 요구한 ‘친윤·중진·지도부 험지 출마 및 불출마’ 혁신안을 최고위원회의 안건으로도 올리지 않았다. 지도부 9명이 공개 발언을 했지만 아무도 혁신위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김예지 최고위원을 제외한 8명이 “이재명 대표, 이제 정치 내려놓으십시오”라는 등 더불어민주당과 이 대표를 비판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보궐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 비난은 줄이고 민생과 정책을 앞세우겠다는 당의 기조가 선거 이전으로 ‘리셋(reset)’됐다는 지적이다. 선거 직후 “2탄, 3탄이 계속될 것”이라던 정책 발표도 ‘메가시티’ 구상과 ‘공매도 금지’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혁신위 출범 이래 정치권에서는 “지난 3월 ‘김기현 체제’ 이후 국민의힘이 이렇게 여론의 관심을 받은 적은 없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내에서는 “혁신위 2주 만에 수도권 지지율이 올랐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던 김 대표가 혁신안을 거부하고 혁신위가 ‘조기 해체’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 분위기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형국이다. 이날 구독자 34만명을 보유한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의 최고위 생중계 시청자는 70여 명 수준이었다. 과거 이준석 전 대표 시절엔 시청자가 수천 명에 달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의원의 53%를 차지하는 59명의 초선들은 혁신안에 침묵했다. 혁신위 관계자는 “희생을 요구받은 중진들이야 그렇다 쳐도 초선들은 뭐 하는 건가”라며 “당내 호응이 전무하니 인 위원장의 ‘원맨쇼’가 됐다”고 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최근 인 위원장을 만나 “예전엔 초·재선들이 정풍(整風·쇄신) 운동을 했는데 지금 초선들은 눈만 껌뻑이고 있다”고 했다.
현재 지역구 국민의힘 초선의 70%가 ‘공천=당선’으로 불리는 영남 출신이다. 이들은 오히려 공천권을 가진 지도부의 심기 경호에 나섰다.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 수행실장을 했던 비례대표 초선 이용 의원이 최근 의원총회에서 “김기현 체제로 총선을 치르자”고 하자 ‘윤심(尹心)’ 논란이 또 반복됐다. 보궐선거 전까지 수석대변인을 했던 초선의 강민국 의원은 중진 희생을 압박하는 인 위원장을 겨냥해 “당의 위기를 자초하는 말을 삼가라”고 했다. 당 관계자는 “지난 전당대회 때 초선 50명이 당 주류의 지원을 받는 김기현 대표를 지지하면서 경쟁자였던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던 것과 같은 모양새”라고 했다.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 ‘친윤’ 이철규 전 사무총장은 ‘현역 물갈이’ 공천과 밀접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여전히 실세로 평가된다. 선거 이후 신임 사무총장(이만희)과 최고위원(김석기)에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이 들어오며 ‘영남 지도부’의 위상도 그대로다. 김 대표는 “비대위는 없다”며 대표직 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 대표가 “당을 도와 달라”며 출범시킨 혁신위가 사실상 좌초 상태가 됐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은 조용한 분위기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은 “공천 관련 사안은 공천관리위원회 결정 사항이라 공관위에서 논의한다는 것일뿐 지도부가 혁신위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특정 의원 개인의 험지 및 불출마 사안 역시 최고위에서 의결할 수도 없고 그런 전례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혁신위의 (불출마) 제안이 오면 검토하겠다고 한 만큼 어느 정도 호응을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당의 키워드가 ‘혁신, 변화’여도 모자랄 시점에 다시 ‘안정, 보수’가 돼가고 있다”며 “지는 길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두가 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