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중진·지도부 험지 출마 및 불출마’ 혁신안의 수용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어 온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6일 만났다. 이날 두 사람의 비공개 회동은 15분 만에 끝났다.
앞서 인 위원장은 지난 4일까지 ‘희생 혁신안’에 대한 당 지도부의 공식 답변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김 대표는 당일 최고위원회의 안건으로 혁신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이날 비공개 회동은 4일 이후 당과 혁신위의 갈등이 고조되자 사태를 봉합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졌다.
김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면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할 수 있는 사안이 있고 공천관리위원회나 선거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지금 바로 (혁신안을) 수용하지 못하는 점은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이에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책임 있는 분들의 희생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지금까지 혁신위가 절반의 성과를 만들어냈다면 나머지 절반의 성공은 당이 이뤄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달 24일까지가 임기인 혁신위가 사실상 ‘조기 해체’ 수순으로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혁신위 관계자도 이날 사견을 전제로 “우리 역할은 이 정도면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6일 오후 5시 국회 국민의힘 당대표실에서 열린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비공개 회동은 15분 만에 끝났다. 대표실에서 나온 인 위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국회를 떠났다.
앞서 5분간 취재진에게 공개된 모두 발언에서도 김 대표는 “역대 어느 혁신위보다 왕성하게 활동해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계신다” “굉장히 좋은 혁신적 어젠다를 많이 제시하셨고 그런 점을 잘 존중하고 녹여내서 결과물로 만들어내겠다”고 했지만 인 위원장은 “네” “감사합니다”라는 답변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공개 회동에서 인 위원장은 먼저 이날 오전 직접 차를 운전해 부모님의 묘소에 다녀왔다고 김 대표에게 말했다고 한다. 지난 9월 별세한 인 위원장의 어머니는 전남 순천 결핵 재활원 부지 내 있는 부친의 묘지 옆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김 대표는 “혁신위 활동으로 당이 역동적으로 가고 있다. 그간 고생 많으셨고 남은 기간도 잘해주시길 바란다”며 “공천관리위원장 제안은 인 위원장께서 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한 충정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충분히 공감한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인 위원장이 “혁신위에 전권을 준다고 공언한 말씀이 허언이 아니라면 저를 공관위원장에 추천해달라”고 제안했지만 김 대표가 이를 두 시간 만에 거절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당시 인 위원장은 당 지도부가 ‘희생 혁신안’에 대해 “공관위 결정 사항”이라는 답변을 반복하자 “혁신안이 공관위를 통해 관철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자신이 직접 공관위원장을 맡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단칼에 제안을 거절하고 당 일각에서 “결국 공관위원장 자리를 욕심낸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자 인 위원장은 이날까지 외부 연락을 끊고 두문불출했다.
김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저희 지도부의 혁신 의지를 믿고 맡겨달라”면서도 “(혁신안을) 지금 바로 수용하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달라. 긴 호흡으로 봐주시면, 어떻게 ‘스텝 바이 스텝’ 할 것인가 고민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는 이달 중으로 출범할 공관위에서 혁신안을 논의하겠다는 기존 지도부의 입장을 또다시 반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인 위원장은 “총선 승리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국민의 뜻을 혁신안에 담고자 했다”며 “오늘 만남을 통해 김 대표의 희생과 혁신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혁신위 일정은 목요일(7일) 회의에서 당무 일정을 감안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혁신위는 ‘희생 혁신안’을 포함한 전체 논의안을 7일 회의에서 정리한 뒤 오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할 예정이다. 당내에서는 “혁신위가 사실상 활동 종료 수순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10월 혁신위 출범 이래 활발하게 언론 인터뷰를 해왔던 인 위원장 역시 이날 비공개 회동 이후 “당분간 신문 인터뷰나 방송 출연은 하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 위원장은 회동이 끝나자 “언론을 안 만나고 싶다. 다른 나가는 문이 있느냐”고도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혁신위 내부에서는 인 위원장이 첫 마디로 ‘국민의 뜻을 혁신안에 담았다’고 김 대표에게 말하면서 당에 대해 항의를 표시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혁신위원은 “그간 당이 혁신위 배후에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 있다거나 혁신위가 음습한 권력 투쟁의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다고 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낸 것 아니겠느냐”며 “이제 혁신위로서는 더 이상 할 게 없다, 나머지는 당이 하기에 달렸으니 알아서 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김 대표와 인 위원장은 혁신위 출범 이후 지난달 17일에도 만났었다. 당시에도 인 위원장이 ‘윤심(尹心)’을 언급하며 혁신안 수용을 압박하자, 김 대표가 “대통령을 언급하지 말라”고 반박하며 갈등이 불거져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자리였다. 당 관계자는 이날 회동에 대해 “결국 혁신위의 조기 해산으로 이어진 상처뿐인 봉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