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맨 왼쪽) 경제부총리와 국민의힘 윤재옥(맨 오른쪽) 원내대표, 유의동 정책위의장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이덕훈 기자

정부가 1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 산업 발전 기본법(서발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 대상에 ‘의료’ 분야를 뺀 야당 주장을 수용할 것으로 10일 전해졌다.

정부는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의료 분야 역시 서발법 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여당은 “갑자기 입장을 변경하게 된 이유를 당에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당혹해 했다.

국회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발법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발법은 유통, 관광 등 서비스 산업 규제를 개선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원욱 의원안은 보건·의료 분야를 법 적용을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의료·약사·건보·국민건강증진법 등 보건·의료 4법을 서발법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발법 적용 대상에 보건·의료 분야를 넣으면 공공성이 보장돼야 할 의료 분야가 영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기본적인 입장은 보건·의료 산업도 서발법 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급 보건·의료 인력이 건보 데이터 등을 활용해 다양한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고, 이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엔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전원이 의료를 지원 대상에 포함한 서발법을 당론 발의하기도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의원 시절인 2020년 낸 추경호안 역시 보건·의료 배제 조항이 없다. 다만 의료인의 진료거부 행위 금지(의료법), 건강보험 의무 가입(건보법) 등 의료 공공성과 관련된 조항은 서발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게 했다.

정부도 올 8월 당 정책위에 보고할 때만 해도, 보건·의료 분야를 서발법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보건·의료 산업은 우수한 인재가 집중된 분야이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부가가치 성장 산업이기 때문에 규제 완화 등의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건·의료 산업을 제외하면, 의료 공공성과 별 관계없는 산업까지 신규 서비스 도입이 늦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당시 정부는 당에 설명했다. 게다가 서발법보다 보건·의료 관련 법을 우선 적용하기 때문에, 보건·의료 관련 법 개정을 하지 않는 이상 의료 영리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했다.

당 관계자는 “정부가 왜 4개월 만에 갑자기 보건·의료 분야를 뺀 서발법 야당안을 수용하려하는 지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해 서발법을 통과하는 게 중요해 여야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있다”며 “우선 여야 이견 보건·의료 분야는 제외한 서발법을 우선 통과시키되, 법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보건·의료 분야도 법 적용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점도 앞으로 추가로 국회에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서비스산업은 우리 경제 부가가치의 60%, 고용의 70%를 차지한다. 그러나 작년 기준 우리나라 서비스 수출은 1302억 달러 규모로 전체 수출의 약 16%로 20여년간 정체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서비스 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11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서발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의료 분야 포함 여부를 두고 여야가 입장이 갈려 12년간 국회 문턱을 못 넘었다. 정부의 통합된 서비스 산업 지원 체계가 없다보니 의료는 보건복지부, 금융은 금융위원회가 전담하는 식으로 각 부처별로 정책 결정을 해, 서비스 산업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