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초선 홍성국(세종갑) 의원이 13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30년 경력의 증권맨 출신으로 증권사 사장을 지낸 경제 전문가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영입돼 전략 공천을 받았다. 하지만 홍 의원은 이날 “지금의 후진적 정치 구조가 갖고 있는 한계로 인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승자와 패자만 있는 ‘제로섬 정치’의 폐해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나쁘다는 걸 체감했다”며 “적응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홍 의원은 “사회 양극화나 저출생, 고령화, 기후변화, 산업 구조 전환 등 우리 사회 대전환의 과제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국회의원으로 열심히 떠들어도 (정쟁에 가려) 사회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홍 의원은 “(문제 제기를) 국회에서 나가서 하는 게 낫다”며 “밖에 가면 몇 천 명짜리 강의도 한다. 여기 있기보다 나가서 사회 지도층에 그런 강의 한 번 하는 게 더 영양가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런 생각을 3~4년 전부터 했다”며 이번 불출마 결정이 ‘당내 민주주의 억압’ 얘기가 나오는 현 민주당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쇄신을 포기한 대한민국 정치와 민주당이 홍 의원을 버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에선 당 기득권을 쥔 중진이나 친명이 아닌, 초선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홍성국 의원은 이날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4년간 나름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꿔 보려 노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대전환을 경고하고 대안을 만드는 것이 정치하는 목적이자 소임이라 생각했지만 후진적 정치 구조의 한계로 인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홍 의원은 “때로는 객관적인 주장마저 당리당략을 이유로 폄하받기도 했다”며 “이런 한계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한 저는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미래 비전을 만드는 미래학 연구자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여야가 극렬 대립하는 정치 구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언급하며 “내가 이기기 위해 남을 제거해야 하는 전쟁이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 민간 부문과는 달랐다”고 했다.
홍 의원은 “세계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대전환의 시대를 맞았지만 민주당도 제대로 못 따라가고 있다”고 했다. “국회 오기 전에 강의나 인터뷰, 책 집필을 통해 제 의견을 알렸는데 오히려 국회의원이 돼서 한계가 많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경제 분야 인재로 당에 영입된 홍 의원은 당 경제대변인, 경제 담당 원내대변인, 원내 경제특보 등으로 활동했다. 1년여 동안 경제 이슈를 다룬 별도의 ‘경제 브리핑’도 했다. 하지만 홍 의원은 “브리핑에서 ‘한국이 이렇게 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거기에 대한 대응은 정쟁화되어 유감스러운 상황이 누적됐다”며 “계속 발표했지만 (관련 보도는) 거의 한 줄도 안 나왔다”고 했다.
당 일각에서는 경제 전문가이자 시장 논리에 밝은 홍 의원이 민주당의 반시장적이고 포퓰리즘 일변도 정책에 실망해 내린 결정이라는 말도 나왔다. 한 인사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추진하는 확장 재정과 ‘이자 제한법’ ‘횡재세 도입’ 등에 홍 의원이 동의를 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홍 의원은 “그런 법이 발의되기 훨씬 전부터 정치를 계속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고 (불출마)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홍 의원은 불출마 선언에 대해 “정치 상황과 연결 짓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홍 의원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는 환경이 재선을 포기한 주요 배경이 됐을 거란 얘기도 나왔다. 이원욱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대한민국 정치와 민주당이 홍 의원을 버렸다”며 “홍 의원 같은 선하면서 뚝심 강했던 정치인조차 지쳐서 민주당을 이탈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권력 친명 기득권 정치인들은 꿈쩍도 안 하고 요직을 차지하며 공천권을 손안에 쥐고 있다”며 “민주당 인적 쇄신은 없다. 국민의힘보다 못하다”고 했다.
홍 의원의 불출마를 두고 “당이 경제계 전문가를 기껏 영입해 간판으로만 쓰고 제대로 활용을 못 한 사례로 남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준비 없이 (국회에) 들어온 측면이 많다”며 “그 이전부터 정치를 했던 분들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었다. 앞으로 영입되는 분들은 서로 공유하고 학습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의 이탄희 의원도 이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비례 의석을 지역구 의석과 연동해 배분하는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와 ‘위성 정당 금지법’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이 의원은 지난달 28일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지역구인 경기 용인정 대신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했었다. 이 의원은 이날 불출마를 선언하며 “내가 가진 것도, 가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다 내놓겠다. 선거법만 지켜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