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13일 오후 5시 3분쯤 페이스북에 당 대표 사퇴 입장문을 올렸다. 이준석 전 대표가 김 대표와 이날 오전 회동한 사실을 밝힌 지 약 30분 뒤였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1일 오후부터 자신의 거취 문제를 두고 잠행에 들어간 상태였다. 당내 인사들과 접촉도 최소화하며 고심을 거듭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27일 탈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두 사람이 이날 오전 11시부터 1시간 비공개 회동을 가진 것이다.
두 사람의 회동은 이 전 대표가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유튜브 방송에서 말하며 공개됐다. 그는 “김 대표가 만남을 공개해도 될 것 같다고 하셔서, 저도 동의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제 거취에 대해 얘기하려고 만나기로 예정된 것인데, 어쩌다 보니 김 대표 거취 얘기를 더 하게 됐다”고 했다.
실제 두 사람의 회동은 지난주 국민의힘 중진 의원 2명이 “김 대표를 만나서 통합을 논의해달라”고 이 전 대표에게 요청해 이뤄졌다고 한다. 김 대표의 거취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만나는 것이 결정됐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힘을 합쳐야 한다”며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을 만류했다고 한다. 또 이 전 대표에게 수도권 경합 지역의 출마를 권유하며 “당의 수도권 총선을 이끌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 이날 만남이 공개된 뒤 김 대표의 신당 참여 가능성이 제기되자, 김 대표는 다시 페이스북에 “(나는) 골수 뿌리 당원”이라며 “당이 분열되어서 안 되고 신당에 참여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패배 후 꾸려진 ‘2기 김기현 지도부’에 대해 “2주를 못 갈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런데 회동 제안을 받은 무렵부터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 전 대표는 지난 7일 좋아하는 당 의원으로 김 대표와 주호영·김도읍 의원을 꼽았고, 지난 12일 김 대표 사퇴 여론이 일 때는 “용산에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김기현 대표에게 린치하는 당신들은 정말 싸가지가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유튜브에서도 김 대표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저와 김 대표가 대표·원내대표로 있을 때 저희는 승리조였다. (과거 총선 승리를 이끈)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처음 승리해본 조합”이라고 했다. 그는 김 대표의 거취에 대해선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시간을 가지시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또 “‘김건희 여사 특검’의 재의결 시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민주당이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공천 탈락(컷오프)을 기다린 뒤 재의결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김 대표에게 조언했다”고 했다. 공천에 탈락한 현역 의원들이 나중에 이탈해 김 여사 특검법에 반대하지 않을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김 대표가 (김건희 여사 등) 다른 사람 문제 때문에 너무 피해 입으시면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한 의원은 “(이 전 대표의 의도는)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취지”라며 “이 전 대표가 조건이 맞았을 경우 당에 다시 들어가 김 대표와 다시 호흡을 맞춰 총선 승리를 이끌고 싶어한 것 같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 전 대표와의 회동 직후엔 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 의원을 만나 국민의힘 입당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안팎에선 이날 김 대표가 이 전 대표와 거취 문제와 정국 해법을 논의하자, “김 대표의 거취 입장 표명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김 대표의 거취 표명이 늦어지자 “당 대표직 사퇴 요구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사퇴를 선택했다. 당 관계자는 “주변에서 사퇴를 강하게 만류해 고민하다, 당을 위해 마지막으로 사퇴를 선택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