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5일 과거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에 가담한 정의찬 이재명 대표 특보에 대한 당 후보자 검증위의 ‘적격’ 판정에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부적격’으로 결과를 뒤집었다. 민주당은 정 특보가 고문치사 사건에 가담했던 가해자라는 걸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며 “업무상 실수”라고 했다. 하지만 정 특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 신청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그는 고문치사 사건은 “시대적 비극”이자 “공안 정국의 공포가 빚은 참사”라고 했다. 정 특보는 사건 관련 서류를 다 제출했다며 검증위가 자신의 과거 행적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수’가 아니라, 당이 논란을 덮기 위해 판정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정 특보는 지난 14일 발표된 민주당 후보자 검증위의 적격 판정자 95인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정 특보가 1997년 전남대에서 발생한 고문치사 사건 가담자였다는 점에서 당 안팎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이재명 대표는 15일 오전 정 특보의 적격 판정에 대해 “아마 규정을 잘못 본 업무상 실수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병기 검증위원장은 “검증 자료에 치사 부분이 있었는데 놓쳤다”고 했다. 검증위는 이날 오후 긴급 회의를 열어 적격 판정을 취소하고 부적격을 의결했다.
민주당은 정의찬 특보가 ‘총선 후보자 적격 판정’을 받은 건 실수라고 강조했다. 김병기 위원장은 “워낙 자료가 많아서 놓친 것”이라고 했다. 고문치사 사건 전력을 알았다면 당연히 부적격 판정했을 거라는 취지다. 김 위원장은 “언론에서 만약 (지적을) 안 해줬으면 그냥 넘어가는 거였다”며 “그래서 ‘큰일 났다’고 보고하고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도 말했다. 검증위는 오후 2시 회의를 소집했고 한 시간여 뒤 “다시 검증한 결과 ‘예외 없는 부적격 사유’ 범죄 경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해 부적격 의결하였다”고 공지했다.
그러자 정 특보는 오후 4시 국회 기자회견에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 한 톨의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가책이 없다는 얘기다. 정 특보는 “1997년 치사 사건 관련, 폭행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폭행을 지시하지도 않았다”며 “광주·전남 지역 학생운동을 이끌던 책임자로 양심에 따라 법적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했다. “당시 학생운동 문화가 그러했다”고도 했다.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산하 남총련(광주·전남대학총학생회연합) 간부들이 일반인인 25세 이종권씨를 경찰 프락치로 몰아 전남대에서 쇠파이프로 폭행하고 고문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정 특보는 남총련 의장이자 조선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정 특보는 당시 1심에서 징역 6년,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사면·복권됐다. 그는 수사와 재판을 거쳐 중형을 선고받은 데 대해서도 “지금 검찰과 과거 검찰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정 특보 자신도 “공안 당국의 강압적 수사에 의한 피해자로 평생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무고하게 혐의를 뒤집어썼다는 취지다.
민주당 안에서는 정 특보의 적격 판정이 하루 새 뒤집힌 것을 두고 “연극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정 특보가 지난 8월 이재명 대표에게 ‘특보 임명장’을 받을 때도 이미 ‘고문치사 가담자’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의 한 의원은 “뻔히 다 아는 내용을 갖고 ‘실수’ 운운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정 특보가 ‘이재명 측근’이기 때문에 아무도 탈락시키자고 얘기를 못 한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다른 의원은 “95명 속에 묻히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다가 딱 걸리니까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게 다 ‘이재명 사당화’의 한 단면”이라고 했다.
정 특보의 적격 판정이 논란이 되자, 당 안에서는 한총련 5기 의장을 지낸 강위원 당대표 특보의 심사 결과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1997년 강 특보의 한총련 의장 취임을 앞두고 행사장이었던 한양대에서는 23세 이석씨를 감금·폭행해 숨지게 한 ‘이석 치사 사건’이 있었다. 강 특보는 2018년 광주 광산구청장 출마를 준비하다 과거 성추행 사건이 불거져 출마를 포기하기도 했다. 강 특보 심사에 대해 김병기 위원장은 “아직 (심사 신청서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