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옥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뉴스1

15일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문제를 놓고 여당 의원들 간 격론이 벌어졌다. 친윤계는 대중 인지도가 높은 한 장관을 설득해 비대위원장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비윤계에선 “대통령 최측근을 비대위원장에 임명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김기현 대표가 사퇴하면서 다음 주쯤 지도부를 비대위로 전환한다.

이날 의원총회는 오전 11시부터 2시간 가까이 비공개로 열렸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여의도연구원장(당 싱크탱크)을 맡고 있는 김성원(재선·경기 동두천연천) 의원이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섰다. 김 의원은 “한동훈 장관을 삼고초려로 모셔와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고 공감을 얻는 분을 빨리 (비대위원장으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성호(초선·비례) 의원이 “총선 승리를 이끌 분이 한 장관이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자 김웅(초선·서울 송파갑) 의원이 “우리가 국민의힘이냐 용산의힘이냐. 왜 짜고 와서 한동훈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미느냐”며 반발했다. 김 의원은 “북한에서 김주애(김정은의 딸)를 ‘샛별 여장군’이라고 했는데, 우리 당에서 새로운 김주애를 올리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김 의원은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하면 내년 총선 승리는 어렵다”며 “100석 이하로 가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상황을 보고 싶으냐”고 했다. 김 의원 발언에 대해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수행실장을 했던 이용(초선·비례) 의원이 “그만하라”고 반발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한동훈 장관이 지난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특정인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은 없다”며 자제를 당부했지만 의원들 발언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찬반에 집중됐다. 최고위원인 김석기(재선·경북 경주) 의원은 비대위원장으로 한 장관을 언급했고, 당 중앙위 의장인 김학용(4선·경기 안성) 의원은 “현재 수도권 민심을 보면 한 장관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김학용 의원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했다고 한다.

이용호(재선·전북 남원임실순창) 의원은 “선거 경험이 있고, 중도, 수도권 승부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적장이라도 모셔야 하는 상황”이라며 “동시에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가 있는 사람이 비대위원장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통화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 적임자”라고 했다. 이태규(재선·비례) 의원은 “‘원희룡이냐 한동훈이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선 안철수·이준석·홍준표 등 대선 연합 전선을 복원한 상태에서 한동훈·원희룡 장관도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이용호, 이태규 의원은 각각 서울·경기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비대위 전환을 계기로 대통령의 변화와 대통령실과 친윤 중심의 당정 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병수(5선·부산 진갑) 의원은 “대통령이 잘못된 길을 가면 당당하게 ‘국민의 뜻이 이렇다’고 대통령께 말을 할 수 있는 비대위원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은아(초선·비례) 의원은 “민심이 바라는 건 대통령의 획기적인 변화”라며 “우리가 총의를 모아 대통령께 간곡히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비대위원장 추천권을 가진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은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고 했다. 윤 권한대행은 의총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국민 눈높이에 맞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고, 총선 승리를 위해 우리 당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나 실력을 갖춘 분’이라는 비대위원장 기준에 대해 (의원) 대부분이 공감했다”며 “다양한 의견을 앞으로도 듣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오는 17일 국회에서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연석회의를 열어 비대위 구성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은 “비대위가 현상유지위원회가 된다면 금세 비상 상황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했다.

김기현 대표가 지난 13일 당대표직에서 사퇴한 직후 여당에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 장관 후임이 결정되지 않을 경우 법무부를 차관 대행으로 둘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정치 신인’인 한 장관을 영입해 민주당의 86 정치인들과 대비되는 세대교체 구도로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당 관계자는 15일 “한 장관은 30~50대 여성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라며 “일부 반대가 있지만 한 장관 카드가 정답”이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낮은 지지율 극복을 위해선 정치권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입할 필요가 있고, 그럴 사람은 한 장관”이라고 했다. 반면 친윤 진영 내에서도 “정치 경험이 있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대위원장에 임명해 당정 관계를 안정시키는 게 윤 대통령이 원하는 바”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당 당직자는 “윤심(尹心) 내세워 김기현 대표 선출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또다시 비대위 전환과 비대위원장 선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불출마 장제원 "저는 긴 터널에 들어가지만…" - 국민의힘 장제원(단상 위 왼쪽) 의원이 아내 한윤순씨와 함께 15일 부산 사상구청 강당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장 의원은 이날 의정 보고회에서 “새로운 국회가 만들어지면 저는 긴 터널에 들어간다”면서도 “내년 국민의힘이 승리해서 윤석열 대통령이 3년 반 뒤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박수를 받고 나온다면 저는 그 깜깜한 터널에서 못 나와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당내에선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강조됐던 ‘수평적 당정 관계’ 기조가 비대위원장 선정 과정에서 퇴색되는 인상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비대위원장 선출 과정에서 용산이 직접 개입하거나 친윤 의원들을 중심으로 특정인으로 몰아간다면 당이 또 ‘용산 2중대’라는 이야기만 듣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 당정이 대등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경우 누구를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워도 원하는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혁신한다더니 쇼였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선 비대위 구성, 총선 공천 과정에서 대통령실이나 친윤 핵심들이 영향력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