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 임명 문제가 “한동훈 법무장관이냐, 아니냐”라는 선택지로 좁혀졌지만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한 국민의힘은 18일 원·내외 당협위원장 200여 명과 연석회의를 열고 재차 의견 수렴에 나선다.
대통령실과 친윤 핵심 등 여권 주류가 주장하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가장 큰 이유는 지지층 결집이다. 한 핵심 인사는 “현재 당원과 지지자들이 가장 원하는 사람이 한동훈 말고 누가 있나”라며 “지난 대선 이후 흩어지고 느슨해진 보수를 가장 잘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는 총선까지 남은 넉 달 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리더십을 둘러싼 야권의 분열 가능성에 대비해 여권의 대선 주자 1위인 한 장관을 등판시켜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젊고 참신한 이미지로 대중적 인기가 있는 한 장관을 내세워 ‘영남당’ 이미지의 국민의힘 간판을 바꾸는 효과도 거론된다. 한 친윤계 의원은 “‘여의도 신인’ 한동훈을 투입하면 당내 세대교체와 틀을 바꾸는 효과로 전당대회나 재창당 같은 컨벤션 효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과의 전선을 ‘검사(한동훈) 대 피의자(이재명)’ 구도로 선명하게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석열 정권의 중간 심판 선거 성격을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야당 심판으로 바꿀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한동훈이 전면에 나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부각되는 모습은 민주당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그림”이라고 했다.
반면 당내 비주류 측에서는 “승부처는 중도층인데, 대통령 직계인 한 장관으로는 중도층 확장이 힘들다”고 반발한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이날 “보수 울타리를 넘어서 중도도 포용할 수 있는 정치의 새판 짜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 장관의 지지는 보수표에만 기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장관이 정치권에 처음 데뷔하면서 곧바로 비대위원장 직책부터 맡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많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경험 문제가 한 장관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정치 경험 많고 큰 판을 다뤄본 사람을 영입해 비대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태경 의원도 “복잡한 정치 국면엔 정치력이 확인된 사람이 비대위원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권 유력 대선 후보를 ‘일회용’으로 조기 소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장관이 검찰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오래된 최측근이었다는 점에서 “한동훈 비대위 체제는 ‘친윤당(김기현 체제)’을 ‘찐윤당(진짜 친윤)’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인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현 기조대로 변화 없이 가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바지사장’ 뒤에 또 ‘바지사장’을 앉히는 건 총선 망하는 길”이라고 했다.
여권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됐던 수직적 당정 관계를 한 장관이 탈피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최재형 의원은 한 장관을 겨냥해 “비대위원장은 적어도 민심의 소리를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비대위가 성공하려면 윤 대통령이 당의 위상을 충분히 인정하고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카드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일종의 도박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당장 비대위원장이 할 일은 이준석 신당 문제,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및 대통령실 참모진 변화 요구, 공천 등인데 어느 하나 한 장관 경험으로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한 장관 외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등 당내 비주류 측의 대안이 중구난방으로 마땅치 않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한 장관 비대위원장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