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찬 당대표 정무특보(왼쪽)와 양부남민주당 법률위원장.

민간인 고문치사 연루 사실이 드러나 공천 예비 심사 부적격 판정을 받은 더불어민주당 정의찬(50) 당대표 정무특보 측은 “강압 수사의 피해자”라며 탄원서를 돌리고 나섰다. 하지만 당시 정씨를 수사하고 기소한 양부남(62) 민주당 법률위원장은 “강압 수사는 없었다”고 했다. 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두 사람은 내년 총선에서 각각 전남 해남·완도·진도(정의찬), 광주 서구을(양부남)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친명계가 친명계에게 ‘강압 수사’를 주장하고 이를 부인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 특보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서 “현장에 없었고 (폭행을) 지시한 적도 없으나 강압적 수사로 더해지는 고통을 볼 수 없어 의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담은 온라인 탄원서를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20일부터 공유하며 지지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탄원서에는 “같은 당의 동지가 겪은 시대적 아픔과 상처를 보듬지 못하면서 어떻게 고통받는 국민의 삶을 보듬을 수 있겠냐” “공직 후보자 자격 심사가 시대적 상처와 아픔을 헤집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 특보는 지난 15일 부적격 판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서는 “공안 당국의 강압적 수사에 의한 피해자로 평생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논란이 됐던 1997년 ‘이종권 치사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는데 강압 수사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 검사로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양부남 민주당 법률위원장은 21일 본지 통화에서 “강압 수사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양 법률위원장은 “경찰에서 사건이 넘어왔을 때는 정의찬은 빠져 있었는데 구속된 피의자 중 1명이 정의찬이 가담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정의찬을 다음 날 조사했더니 정의찬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고 했다. 정 특보는 당시 현장 검증 과정에서도 ‘정의찬’ 이름표를 목에 걸고 폭행을 재현했다. 양 위원장은 ‘정 특보가 폭행 현장에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자세한 사건 내용은 판결문을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특보가 출연한 친이재명 성향 유튜브에선 “양부남 위원장도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양 위원장은 본지에 “탄원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며 “(서명하면) 강압 수사를 한 사실이 없는데 강압 수사를 했다고 인정하는 꼴 아니냐”고 했다. 다만 양 위원장은 치사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민주적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은 한총련 산하 남총련(광주·전남대학총학생회연합) 간부들이 민간인 이종권씨를 경찰 프락치로 몰아 쇠파이프로 폭행하고 고문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정 특보는 남총련 의장이자 조선대 총학생회장이었다. 당시 정 특보는 항소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약 4년 3개월 복역한 뒤 2002년 사면·복권됐다.

법조계에서도 정 특보의 ‘강압 수사’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1997년은 문민정부 시절로 군사정권 시절처럼 강압 수사가 이뤄졌을 가능성은 작다”고 했다. 1999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새로운선택 곽대중 대변인은 “당시 한총련 계열 운동권은 ‘의장’을 결사 옹위해 온 조직인데 의장이 자기 죄가 없는데도, 다른 운동권 학생을 감싸기 위해 나서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비명계 수도권 재선 의원은 “정 특보가 정치적 생명을 위해 아무 말이나 다 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뿐 아니라 자기가 소속된 정당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당 관계자는 “친명계 간의 내부 총질 아니냐”고 했다. 민주당은 22일 예비 후보 공천 자격 이의신청처리위원회 첫 회의를 연다. 빠르면 이날 정 특보에 대한 심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