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국제공항은 지난해 활주로 이용률이 0.1%로, 전국 공항 15곳 가운데 최하위였다. 비행기가 연간 1000번 뜨고 내릴 수 있다면, 실제로 이착륙을 한 것은 한 번뿐이었다는 뜻이다. 지난해 무안공항 이용객은 2만9394명으로, 하루 평균 100명이 안 됐다. 이용객이 적어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는 공항’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공항에선 지난해부터 약 500억원을 투입해 2800m 길이 활주로를 3160m짜리로 연장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은 75억원이었다. 하지만 지난 21일 국회에서 가결된 예산안 최종안에선 100억원으로 늘었다. 막판 비공개 심사에서 ‘쪽지 예산’으로 늘린 것이다. 쪽지 예산이란 여야의 막판 밀실 협상장에 쪽지로 청탁을 넣어 최종 예산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무안공항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서삼석(전남 영암무안신안·재선) 의원의 지역구에 있다.
이 공항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착공됐다. 비용 대비 편익이 1.45로 경제성이 있다며 예산을 타냈지만, 2004년 감사원 감사에서 ‘경제성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감사원이 다시 계산한 경제성은 0.49에 불과했다. 무안공항의 누적 적자는 1000억원이 넘는다.
국회의 내년도 예산 심사 과정에서 무안공항을 비롯한 지방 공항 건설 관련 예산이 461억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22일 집계됐다. 이미 확정된 공항 건설 계획에 따라 정부가 내년에 6793억여 원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여기서 6.8%를 더 늘린 것이다. 전체 예산 증가율(2.8%)의 두 배가 넘는다.
현존 공항 15곳 가운데 인천·제주·김해·김포 등 4곳을 제외한 11곳이 적자 상태로 운영 중이지만, 이 밖에 10곳이 추가로 건설되고 있거나 검토되고 있다. 상당수는 경제성보다는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다.
전남도는 무안공항 활주로를 확장해 중·대형 여객기도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하면 여객 수요가 늘어나 제대로 된 공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인근의 광주공항을 무안공항에 통합시킨다는 계획이다. 2020년에는 국토교통부에 활주로 확장을 건의하면서, 무안공항 이용객이 300만명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그러나 올해 1~11월 광주·무안공항 이용객을 모두 합해도 200여 만명 정도였고, 광주공항도 적자였다.
인접한 전북도에선 새만금 신공항 예산이 국회에서 261억원 증액됐다. 정부는 올해 새만금 신공항 예산으로 135억원을 편성했고, 지난 8월 새만금 신공항을 비롯한 새만금의 각종 SOC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내년 예산을 그 절반가량인 65억5100만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새만금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전북에 전가한다’고 반발하면서 예산이 정부 삭감분 이상으로 늘었다. 새만금 신공항이 당초 계획대로 계속 추진되면 2028년까지 8000억원 이상이 투입된다. 새만금 신공항 옆에는 군산공항이 가동 중이고, 이 공항의 이용객은 지난해 40만여 명, 올해 15만여 명에 불과했다. 군산공항을 닫고 전북의 모든 수요를 신공항으로 가져오더라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은 올해 133억원이 투입됐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5366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가덕도 인근 바다를 메워 만드는 신공항은 부산시에선 사업비를 당초 7조5400억원으로 추산했지만, 지난해 사전 타당성 조사에선 13조76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계산됐다. 최근 국토부는 활주로 2개를 만들 경우 사업비가 15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예산안 심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가덕도신공항 건설공단’이란 기관을 별도로 세워야 한다며 예산 97억여 원을 추가했다. 해양수산부 예산에서도 부산항과 가덕도 신공항 간 통합 물류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며 3억원이 새로 생겼다. 대구경북신공항도 정부가 잡은 내년 예산 100억원에 국회에서 1억5600만원이 추가됐다.
청주공항은 정부 계획에 없던 ‘주기장 확충’ 예산이 국회에서 100억원 생겨났다. 청주공항 이용객이 지난해와 올해 각각 300만명을 넘어선 만큼, 더 많은 여객기를 지상에 대놓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주공항은 최근 5년간 4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흑산도에 소형 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으로 정부가 63억9000만원 편성한 예산도 국회에서 2억원 증액됐다. 경기도에선 인천·김포공항과 별개의 민간 공항을 새로 만드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한 예산이 올해 61억원 투입됐다. 내년에도 54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는데, 경기도 지역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2억원이 늘었다.
철도 건설에서도 여야의 예산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여야는 지난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철도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사업은 2년 전 국토부의 사전 타당성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0.483으로, 경제성 기준인 1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여야는 이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한다는 조항을 특별법에 넣어 사업을 강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