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한동훈(50) 전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명한 이후 수도권 중심의 젊은 ‘한동훈 비대위’를 꾸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탈이념’ ‘중도 확장성’에 초점을 둔 지도부로, 86 운동권 세력이 주축이 된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정치에 대한 한 전 장관의 비판적 태도가 향후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3040·수도권 중심 ‘789 비대위’ 나오나
여권에선 1973년생인 한 전 장관을 주축으로 30~40대 안팎 젊은 인사들이 주축이 된 ‘한동훈 비대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2일 “한 전 장관은 젊음과 새로움으로 우리 정치에서 수십 년간 군림해 온 운동권 정치를 물리치고 탈진영 정치, 탈팬덤 정치 시대를 열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하태경 의원도 소셜 미디어에 “비대위원 전원을 70년대 이후 출생자로 채우자”며 “586 정당 민주당을 더 젊고 참신한 70·80·90년대생 789 정당이 심판하자”고 했다.
한 전 장관은 26일 전국위원회 투표 절차를 거쳐 비대위원장으로 공식 취임한 뒤 10명 안팎의 비대위원 구성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전날 한 전 장관이 “실력 있는 분을 모시는 게 중요하다”고 한 만큼 계파를 초월한 능력 위주 인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권 안팎에선 당 인재영입위원을 맡고 있는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인요한 혁신위’의 이젬마·임장미·박소연 등 외부 혁신위원,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최고위원 등이 비대위원 후보로 거론된다. 한 전 장관은 주변 인사들로부터 실력 있는 정치학자 등 전문가와 여성, 청년 인재를 폭넓게 추천받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선 2011년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 당시 ‘26세 비대위원 이준석’과 같은 파격 인선도 기대하고 있다.
◇정치권 불신하는 韓… 양날의 칼
한 전 장관은 “여의도 300명의 화법은 여의도 사투리”라며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 또는 혐오에 가까운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정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큰 호응을 받으며 그에게 약으로 작용했지만, 이제 정치의 관찰자에서 참여자가 된 이상 이런 인식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 장관은 “정치인에게 뒷돈 준 범죄인을 잡아오는 것은 국가 임무(1월)” “과거 정치인과 정치 깡패처럼 협업(작년 11월)” 같은 발언을 통해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해 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수부 검사로 정치인의 온갖 비리를 수사하며 정치 민낯을 봤을 것”이라고 했다.
한 전 장관은 “제 검사 인생의 화양연화는 문재인 정권 초반기(2월 국회 대정부 질문)”라고 했을 만큼 ‘적폐 청산’ 수사를 이끌며 전성기를 누렸다. 반면 2019년 ‘조국 수사’ 이후 2020년 ‘채널A 사건’으로 코너에 몰리며 한 해 좌천만 세 차례 당했다. 정치 흐름으로 떴다가 정치에 휘말려 좌절했다.
한 전 장관은 작년 8월 국회 법사위에서 “채널A 사건은 나를 타깃으로 한 것으로 피해자는 저고 가해자는 최강욱 의원”이라고 했다. 작년 1월 유시민씨 재판에서는 “유시민씨의 거짓말로 불법 검사가 됐다. 검사로서 이 이상의 불명예는 없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민주당이 ‘싸움닭’이라고 하는 한동훈의 시작은 채널A 사건”이라고 했다.
한 전 장관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민주당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 대선 때 검찰에서 ‘용병(윤석열 검찰총장)’을 데려다 후보로 써야 할 만큼 국민의힘도 무능하지 않았느냐”는 취지로 주변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장관의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이어지며 장점으로 부각됐다. 스스로도 정치권과 구별되는 “국민적 상식”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 정서가 큰 상황을 한 전 장관이 영리하게 자극할 수 있다”고 했다. ‘막대한 세금을 먹는 중앙당을 대폭 축소하자’ 같은 정치 개혁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재명 의원은 중대 범죄 혐의자(9월)” “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아(11월)” 등 정치를 무시하거나 우습게 보는 듯한 태도로 여야 대치 국면만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민주당과 운동권 인사들에 대한 그의 건조한 비난은 보수층엔 박수를 받을지 몰라도 중도층에는 거부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도 정치는 낡고 부패하거나 비생산적 분야라는 인식이 강해 아무것도 못했지 않느냐”고 했다. 정치 냉소는 대야 관계뿐 아니라 공천 갈등처럼 당내 문제가 불거질 경우 지도력 부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같은 인식은 ‘정치 스타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독선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한 전 장관처럼 적과 동지의 구분이 뚜렷한 상태에서 정치 경험까지 없으면 정국 경색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한 전 장관은 현재의 정치적 가치를 스스로 끌어올린 만큼 정치의 습득도 빠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