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총리 출신인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가 24일 만나 더불어민주당 상황에 대한 우려를 공유했다. 민주당은 최근 이낙연 전 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신당 창당에 나서겠다고 해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다. 친명계에서는 “변절자” “신당 초전박살” 등 이 전 대표를 향한 원색적 비난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총리와 김 전 총리는 이날 조찬을 함께 하면서 이 전 대표를 향한 당내 공세에 깊은 분노와 불쾌감을 표했다고 한다. 세 사람은 민주당의 구주류로 문재인 정부에서 잇따라 총리를 지냈다. 민주당 신주류가 된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의 거친 비난이 “도를 넘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이다.
정 전 총리와 김 전 총리가 만난 자리에선 이 전 대표까지 함께하는 ‘3총리 회동’에 대한 언급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3총리는 지난 10월부터 이낙연·정세균, 김부겸·이낙연, 정세균·김부겸 식으로 돌아가면서 만났지만 아직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적은 없다. 당내에선 비명계를 중심으로 전직 총리들의 ‘연대설’도 나온다.
정세균 전 총리와 김부겸 전 총리가 이날 만나 이낙연 전 대표까지 함께하는 ‘3총리 회동’을 논의한 건, 그만큼 당내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기 때문이라고 주변 인사들은 전했다. 한 인사는 “요즘 당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당 핵심 인사는 “3총리가 최근 당 공천이나 개딸 문제에서 비슷한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이재명 체제’에 경고, 견제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정·김 전 총리 측 인사들은 “두 사람이 ‘이낙연 신당’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최근 당내 친명에게서 원색적 비난을 듣고 있다. 이재명 체제에서 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김민석 의원은 이 전 대표에 “전형적인 사쿠라 노선” “사실상 경선 불복”이라고 했다. ‘사쿠라’는 정치권에서 변절자를 뜻하는 모욕적 의미로 쓰인다. 민주당 의원 117명은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에 반대하는 연판장에 서명해 발표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통화에서 “원색적 비난이나 연판장은 ‘나갈 테면 나가라’며 이 전 대표를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정 전 총리와 김 전 총리 입장에서는 같은 당의 원로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 게 당연히 무도하고 잘못됐다 여길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총리와 김 전 총리는 당내 공천 갈등에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최근 민주당 후보자 검증 작업에서 김윤식 전 시흥시장이 ‘부적격’ 판정을 받아 “비명계 공천 학살” 비판이 나왔다. 김 전 시장이 출마하려는 지역(경기 시흥을)의 현역 의원이 친명 핵심이자 공천 실권을 쥐고 있는 조정식 당 사무총장이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최성 전 고양시장도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정 전 총리와 김 전 총리는 “공천 분열은 당 분열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또 국민의힘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워 혁신을 추진하는데, 민주당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당 지도부의 혁신 의지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정치 일선에서 멀어져 있던 3총리가 연쇄 회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자 이재명 대표도 김 전 총리, 정 전 총리와 연달아 만나는 약속을 잡았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김 전 총리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함께 했고, 오는 28일엔 정 전 총리도 만날 예정이다. 김 전 총리는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비명계 공천 배제는 안 된다”고 했고, 이 대표는 “시스템 공천으로 공정하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내에선 3총리가 당 운영과 공천 작업에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경우, 이재명 대표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이미 ‘원칙과 상식’ 등에서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와 통합 비대위 설치 등을 요구하는 상황인데 3총리가 여기 힘을 보태면 정말 이 대표가 ‘2선 후퇴’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3총리의 각자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 대표와 정면충돌하는 일은 있기 어렵다는 예측도 나온다. 한 전직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하고 있지만 다른 두 사람은 그 정도가 아니다”라며 “함께 만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얘기는 ‘싸우고 흩어지지 말고 한데 힘을 모으자’는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