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1875~1965) 초대 대통령이 2024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됐다. 국가보훈부는 “1992년 1월부터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뽑은 이래 처음으로 이 대통령을 선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내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 극복을 이끌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의 기틀을 닦았다. 그러나 이런 공헌은 1960년 3·15 부정선거로 4·19 혁명을 초래했다는 등의 이유로 그간 외면받았다. 400명 넘는 독립운동가를 매달 기념한 지 32년 만에야 초대 대통령이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의사(1992년 1월) 이후 올해까지 선정된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463명이다. 하지만 독립운동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그간 수차례 추천됐음에도 선정되지 못했다. 임정 수반을 지낸 박은식(1999년 4월, 2019년 11월)·안창호(2005년 8월, 2019년 4월)·김구(1995년 8월, 2019년 8월) 선생 등은 문재인 정부 때 중복 선택됐다. 홍범도(1998년 10월)·최팔용(1995년 2월)·여운형(2021년 8월)·권오설(2021년 6월)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도 역대 정부를 거치며 이달의 독립운동가가 됐다.
정부 관계자는 “그간 한국 현대사에서 지나치게 부각된 ‘이승만 폄훼 논란’과 무관하지 않은 처사”라고 했다. 공산주의를 반대해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진보·좌파 진영은 ‘친일’ ‘독재’ 딱지를 붙이면서 70년 번영의 초석을 놓은 그의 공헌은 무시했다. 역대 보수 정부도 이런 공적을 평가하기를 주저한 면이 있다. 초대 대통령 기념관을 현 정부 출범 이후에야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매년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 기념사업회 등에서 인물을 추천받아 국가보훈부, 광복회, 독립기념관, 근현대사 전공 학자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뽑는다. 올해 추천받은 인물은 265명이었고 이 전 대통령 선정 과정은 순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부 관계자는 “최고 훈격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이 전 대통령을 격에 걸맞게 대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광복회 역시 이 전 대통령 선정에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보훈부는 이번 이 전 대통령 선정 이유로 “대한민국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며 헌신했다”고 했다. 1919년 임정 대통령을 지냈고 주미외교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한인자유대회 개최와 한미협회 설립 등의 활동을 했다는 점이 평가됐다. 미국에서 언론 출판을 통해 일제의 부당한 국권 침탈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선 “앞으로도 조명해야 할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이 많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이 전 대통령이 1941년 영문으로 출간한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는 일본의 미국 침공을 예견, 미국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 독립운동 시기부터 미 조야(朝野)와 소통해온 그의 ‘맨 파워’ 덕에 정부 수립, 6·25전쟁 극복,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본지 통화에서 “현재 우리가 누리는 눈부신 번영의 근간은 한미상호방위조약, 곧 한미 동맹”이라고 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만든 분”이라며 “미국은 6·25전쟁 휴전 협상 중 한미 동맹을 원하지 않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우리 후손이 누대에 걸쳐 수혜를 볼 것’이라며 끝내 관철했다”고 했다. 박 장관은 “이승만은 미국의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아야 한다”며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의 건국 지사 중 첫손에 꼽혀야 할 분”이라며 “진영 잣대로 공적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박성준 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를 했다는 것은 또 다른 역사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퇴행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이 전 대통령을 선정한 데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반면 같은 당 최민석 대변인은 “독립운동 역사를 조롱하는 만행”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을 향해 “친일파 청산 방해” “역사의 범죄자” 같은 표현을 쓰며 “윤석열 정부는 친일 세력의 후계를 자처하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윤희석 선임 대변인은 “민주당이 언급한 사실관계 대부분은 전혀 역사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시대착오적 역사 인식과 퇴행이야말로 독립 영웅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훈부는 이날 이 전 대통령 외에도 독립운동가 37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외국인 운동가나 외국에서 활동한 운동가가 대거 포함됐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2월 김창환·이진산·윤덕보·김원식(정의부 100주년) ▲3월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이사벨라 멘지스·데이지 호킹(3·1운동) ▲4월 유기동·김만수·최병호(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100주년) ▲5월 채찬·김창균·장창헌·이춘화(사이토 총독 저격 사건 100주년) ▲6월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플로이드 윌리엄 톰킨스·루이 마랭(한국친우회 외국인들) ▲7월 황진남·이의경·김갑수(독일 유학생 독립운동) ▲8월 곽낙원·임수명·이은숙·허은(여성 독립운동가) ▲9월 안춘생·조순옥·박영준·신순호(광복군 부부) ▲10월 임천택·서병학·박창운(중남미 독립운동) ▲11월 최세윤·정원집·김영백(의병의 투쟁과 순국) ▲12월 패트릭 도슨·토마스 다니엘 라이언·어거스틴 스위니(아일랜드선교사, 제주도에서 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