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수장으로 만난 이재명·한동훈 - 한동훈(오른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예방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뒷벽에는 '김건희 특검, 대통령은 수용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최근까지 구속영장이 청구된 제1야당 대표와 법무부 장관 관계였던 두 사람은 이날 여야 대표 자격으로 처음 대면했다. /남강호 기자

29일 오후 4시쯤 국회 본청 민주당 대회의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 한 위원장이 취임 인사차 방문한 것이다. 두 사람은 ‘김건희 특검, 대통령은 수용하라!’고 적은 현수막을 배경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9월 당시 한동훈 법무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 대표 체포 동의안 처리를 위해 “대규모 비리의 정점”이라고 한 일을 감안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이 때문인지 이 대표가 취재진과 한 위원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악수 한번 할까요” “사진을 한번 먼저 찍을까요”라고 했고, 한 위원장은 미소 지으며 끄덕였다. 이날 회동에 국민의힘은 장동혁 사무총장과 박정하 수석대변인, 김형동 비대위원장 비서실장, 민주당은 조정식 사무총장과 권칠승 수석대변인,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정치권에선 현재 각종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1·2위를 기록하는 양당 대표의 만남에 큰 관심이 쏠렸다. 민주당이 전날 ‘김건희 특검법’ ‘50억 클럽 특검법’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지 하루 만의 면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날 세간의 관심을 의식한 듯 면담에서 ‘특검’ 얘기 등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기보다 ‘협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여당과 야당을 이끄는 대표로서 서로 다른 점도 분명히 많이 있겠지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공통점을 더 크게 보고 건설적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오늘은 제가 이 대표님을 처음 뵈러 온 것이기 때문에 대표님 말씀을 많이 듣고 가겠다”고 했다. 평소 이 대표에게 날 선 비판을 하던 모습과 달랐고, 말을 아꼈다. 그는 “결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힘겨루기나 감정 싸움 하지 말고 둘이 신속하게 결정하자”고도 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우리가 비록 약간 다른 입장에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이러한 국민이 맡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하고자 하는 일들에 대해서 우리 민주당은 언제든지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가치적으로 대립하는 게 아닌 한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또 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선구제·후보상을 하는 방식의 ‘전세 사기 특별법’에 협조해달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 대표가 이런 요구를 말하는 동안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였다.

비공개 면담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이 대표는 “한 위원장님이 오셔서 취재진이 많이 왔다”고 했고, 한 위원장은 이 대표를 손으로 가리키며 “대표님 덕분에”라고 했다. 두 사람은 회의실에 걸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도 함께 봤다. 두 사람은 10분가량 비공개 면담을 했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내년 총선 규칙인 선거 제도에 대해 조속히 결정을 내리자”는 대화를 나눴다고 박정하·권칠승 양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면담은 공개 비공개를 포함해 총 20분 정도였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첫 만남이라 덕담만 주고받는 차원이었다”고 했다.

한 위원장도 면담 후 취재진에게 “양당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국민과 상생에 도움이 되는 효율적 정치를 하자는 말씀을 분위기 좋게 나눴다”고 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 등에 대해선 “국민 선택권을 침해하겠다는 명백한 악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거 직전과 당일인) 4월 9일과 10일에도 생방송으로 (특검 수사 중계를) 때려서 국민이 어떻게 정상적인 선택을 하겠느냐”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엔 김진표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김 의장은 이 자리에서 “정치인은 소통이 잘돼야 한다”며 “한 위원장은 용모와 머리가 스마트하니 잘해 나가리라 믿는다”고 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대화와 타협 정신을 더 배우겠다”고 했다. 면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후 김 의장은 한 위원장에게 오는 1월 9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