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충돌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6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메시지를 통해 ‘행동하는 양심’을 언급하며 “우리가 하나 될 때”라고 통합을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야권 통합”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이라고 했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을 인용하며 이번 주 중 탈당을 시사했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이 대표는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고민정 최고위원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는 싸우는 자, 지키는 자의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이 돼 달라’는 말을 인용하며 “이 말을 가슴에 품고 현실을 바꿔 나가자.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와 민생, 그리고 평화를 우리 손으로 지키자”고 했다. 당내 통합과 함께 정권 심판론을 내세운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축사의 절반 이상을 윤석열 정부 비판에 할애했다. 이 대표는 “지난 1년 7개월 언론 탄압과 노동 탄압이 되살아났다”며 “정당한 권력 감시도, 견제와 균형도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그는 “역대 최저 성장률로 서민의 경제적 고통은 삶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한반도를 항구적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군사 합의도 스스로 깨뜨렸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축사에서 “김 전 대통령의 유언처럼 우리는 또다시 민주주의, 민생 경제, 평화의 가치 아래 단합하고 통합해야 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내게 ‘야권 통합으로 힘을 모으고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루라’고 당부했다”고도 했다. 야권 분열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렇지만 이낙연 전 대표는 7일 “이번 주 후반에는 인사를 드리고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나”라며 예정대로 탈당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광주 5·18 민주 묘지를 참배하고 고향인 전남 영광의 선친 묘소를 찾았다. 5·18 묘지 방명록에는 ‘오월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는 데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 전 마지막 연설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지금의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악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창당에 대해 “양당 모두 싫다는 사람에게 선택지를 주는 야권 재건과 확대의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또 문 전 대통령이 전날 “정치가 다시 희망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을 언급하며 “나는 그 말이 지금의 정치가 희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인다. 무능하고 부패한 양당 독점의 정치 구도가 대한민국을 질식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신당에 합류할 현역 의원에 대해선 “차츰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정치인의 거취는 남이 말해선 안 된다. 참여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이원욱·김종민·조응천·윤영찬 의원이 모인 ‘원칙과 상식’도 이르면 오는 10일쯤 탈당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입원 일주일째를 맞는 이재명 대표는 이날 당대표실을 통해 당분간 외부인을 접견하지 않고 회복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병상 정치’ 설도 부정했다. 권혁기 당대표 정무기획실장은 “혈관 수술이 후유증 우려가 커서 절대 안정 속에서 회복 치료에 전념해 달라는 의료진의 당부가 있었고, 이 대표와 가족은 그에 잘 따르고 있다”며 “이 대표가 병상에서 ‘조속히 당무에 복귀하고 싶다’고 밝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