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했다. 지난 2일 부산에서 피습당해 입원한 지 8일 만이다. 이 대표는 이날 퇴원 일성으로 “모두가 놀란 이번 사건이 증오의 정치, 대결의 정치를 끝내고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제대로 된 정치로 복원하는 이정표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며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이 정치를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칼에 찔렸던 왼쪽 목에 밴드를 붙인 채 병원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지지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고개 숙여 인사한 이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서 살려주셨다. 앞으로 남은 생도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만 살겠다”며 “함께 사는 세상, 모두가 행복하고 희망을 꿈꾸는 그런 나라를 꼭 만들어 보답하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 정치가 어느 날인가부터 절망을 잉태하는 죽임의 정치가 되고 말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되돌아보고, 저 역시도 성찰해 희망을 만드는 살림의 정치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저부터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의료진을 향해선 “생사가 갈리는 위급한 상황에서 적절하고도 신속한 응급조치로 목숨을 구해주신 부산 소방, 경찰, 그리고 부산대 의료진께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수술부터 치료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서울대병원 의료진께도 감사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헬기 이송으로 불거진 ‘부산대병원 패싱’ 논란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와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 등 당내 현안에 대해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만큼, 진영 논리가 낳은 폐해를 지적하고 그보다 나은 정치로 가겠다는 의지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고 했다. 한 친명계 초선 의원은 “국민 분열과 정치권에서의 강대강 대치 국면을 끝내자는 메시지”라고 했다.

이 대표는 당분간 자택에서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당무 복귀 시점은 치료 경과와 의료진의 의견을 종합해 판단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당무와 관련한 의사 결정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날 이 대표와 친명계 중진 정성호 의원이 문자메시지로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징계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부산경찰청은 이날 이 대표 피습 사건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습격범 김모(67)씨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으려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 대표 재판이 연기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불만을 품었다”며 “곧 있을 총선에서 특정 세력에게 공천을 줘 다수의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살해를 결심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좌파 세력에 넘어간다”는 내용의 ‘변명문’도 남겼다. 다른 정치권 인사를 범행 대상으로 삼은 정황은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김씨가 작년 4월쯤 인터넷으로 등산용 칼을 구입했고, 이때부터 이 대표 습격 범행을 계획했다고 판단했다. 칼 손잡이와 날을 개조하고, 이 대표에게 접근하기 위해 지지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와 머리띠도 제작했다. 이 대표 동선은 당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다. 작년 6월부터 범행 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이 대표 일정을 따라다녔다.

김씨의 휴대전화, 컴퓨터, 계좌, 행적 등을 조사한 경찰은 범행을 공모하거나 교사한 배후 세력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김씨 범행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김씨의 변명문 일부를 우편으로 김씨 가족에게 발송한 혐의(살인미수 방조)로 70대 남성 A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민주당은 경찰 발표에 ‘사건 축소·은폐’라며 반발했다. 전현희 민주당 당대표 정치테러대책위원장은 “이번 수사는 사건의 본질을 정치적 의도로 왜곡한 실패한 수사”라며 “테러 동기, 공범 여부, 배후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 민주당에 영입된 류삼영 전 총경은 “경찰 수사가 부실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정치적 중립을 망각한 발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