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대한 최대 30조원 규모의 무기 2차 수출 계약이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대폭 축소되거나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14일 국회에 따르면, 폴란드에 한국산 무기 구매 대금을 추가로 대출해줄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한국수출입은행(수은)법 개정안은 지난 9일 종료된 임시국회에서 한 차례도 심사되지 못했다. 15일 시작되는 새 임시국회에서도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4월로 다가온 총선으로 인해 21대 국회의원 임기 내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폴란드 정부는 2022년 7월 한국항공우주산업의 FA-50 전투기 48대, 한화디펜스(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672문, 현대로템의 K2 전차 980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한국 측과 기본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K9 자주포와 K2 전차 물량은 계약을 1차와 2차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폴란드 정부는 기본 계약 한 달 만인 2022년 8월에 17조원어치를 먼저 사들이는 내용의 1차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당시 한국은 폴란드에 한국산 무기를 살 돈을 빌려주고, 폴란드는 이 돈으로 무기를 사고 향후 돈을 갚아 나가기로 합의했었다. 국가 간 대규모 무기 거래에서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1차 계약에는 수은과 무역보험공사가 6조원씩 총 12조원을 폴란드에 빌려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는 폴란드가 K9·K2 최대 30조원어치를 더 사들이는 2차 계약을 한국 측과 맺으려 할 때 발생했다. 수은과 무역보험공사의 추가 금융 지원이 어려워진 것이다. 현행 수은법에 따르면, 수은의 자본금은 15조원으로 제한돼 있고, 수은법 시행령에 따라 수은은 동일 차주에게 자기자본의 40%까지만 대출해줄 수 있다. 현재 수은의 자기자본은 자본금 15조원을 포함해 18조4000억원 정도고, 그 40%인 7조3600억원 가운데 6조원은 이미 1차 계약에 썼다. 2차 계약에선 1조3600억원 정도만 폴란드에 빌려줄 수 있다.
국회에는 수은의 자본금 한도를 늘려서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법안들이 여러 건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 윤영석, 더불어민주당 정성호·양기대 의원이 각각 발의한 수은법 개정안은 수은 자본금 한도를 현행 15조원에서 25조~35조원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이러면 폴란드에 4조~8조원을 더 대출해줄 수 있게 돼 2차 계약 진행이 가능해진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도 수은의 대출을 받는 것이 기업이 아니라 특정 국가나 정부일 경우에는 자기자본의 40%를 넘겨서 대출을 해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내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도 이 법안들에 대해 “방위산업의 경우 대규모·장기 자금이 필요한 산업 특성상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고, 향후 사우디 네옴시티 건설 사업,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 등 세계 각지의 초대형 인프라 사업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사업에 한국 기업이 도전할 수 있도록 수은의 자본금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수은의 자본금 한도는 이미 7차례나 확대된 전례가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중 어느 한쪽도 수은법 개정에 대해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수은법 개정안은 정성호 의원안이 2021년 한 차례 심의된 것을 제외하고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 법안 처리 지연으로 폴란드 무기 계약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