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정치개혁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선거제 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교란한 ‘떴다방’식 위성 정당이 4월 총선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임의 룰’인 선거 제도의 키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홍익표 원내대표는 15일 라디오에서 “여당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선 현행 제도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47석인 비례대표의 절반은 ‘병립형’으로, 절반은 ‘(준)연동형’으로 뽑는 안을 여당과 논의해 볼 생각”이라고도 했다. 누더기 선거 제도라는 비판을 받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당 등 군소 정당들이 참여하는 ‘개혁연합신당’은 이날 민주당에 “비례 연합 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홍 원내대표는 “논의를 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했다. 4선 중진인 우원식 의원은 “비례 연합 정당을 지지한다”고도 했다.

비례 의석 수를 지역구 의석과 연동해 배분하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난 총선을 앞둔 2020년 초,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제1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논의에서 배제하고,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 정당 3곳과 함께 머릿수로 밀어붙여 만들어낸 선거 제도다. 이 선거 제도는 심상정 당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의석을 배분하는) 산식(算式·계산법)은 여러분이 이해 못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극도로 복잡하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선거제 개편에 대해 “여당과 협의가 안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현행 제도로 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또 비례 위성 정당 창당에 나서기로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덕훈 기자

이 선거 제도에는 중대한 허점이 있다. 소수 정당을 우대한다는 명분으로 지역구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많이 받은 정당일수록 비례 의석을 적게 가져가도록 설계가 된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같은 거대 정당은 지역구에만 후보를 내고, 비례대표 후보들은 문서상으론 별개인 위성 정당 소속으로 만들어 출마시킨 뒤, 선거 후에 흡수하는 꼼수를 쓰는 것이 이득이다.

이런 기형적인 제도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수많은 ‘떴다방 정당’을 낳았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미래한국당’,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 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후보들을 내보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려고, ‘더불어시민당은 진보 세력이 두루 참여하는 플랫폼 정당’이라고 주장하면서 더불어시민당에 기본소득당 등 원외 정당들을 일부 참여시켰다. 더불어시민당 당선자 대부분은 선거가 끝난 지 한 달 만에 민주당으로 갔고, 용혜인 당선자 등 원외 정당 출신들은 자기 당으로 돌아갔지만 21대 의원 임기 내내 민주당을 돕는 투표를 했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열린민주당’을 따로 만들어, 김의겸·최강욱·강민정 의원을 비례대표로 당선시켰다. 이들도 모두 민주당으로 갔다.

이런 선거 제도가 이제 와서 바뀔 가능성은 낮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책임이 없는 국민의힘은 과거 선거 제도인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다. 지역구 의석 수는 따지지 말고, 비례대표 47석을 정당 득표율대로 각 당이 나눠 갖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일방 도입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래픽=정인성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되, 위성 정당은 금지하겠다’고 대선에서 공약했으나, 지난해 말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면서 이 공약은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이제 민주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대로 가는 환경에서 위성 정당의 재가동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자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의 표에 업혀 원내에 진출했던 군소 정당들이 다시 민주당 위성 정당 소속이 되어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본소득당·열린민주당·사회민주당 등 군소 정당들이 참여하는 ‘개혁연합신당’은 15일 민주당에 “22대 국회를 개혁 정치로 이끌 수평적인 ‘비례 연합 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기본소득당 대표이자 개혁연합신당 추진 연합체 공동대표인 용혜인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의 폭주 속에 이준석·이낙연 신당 등 선거공학적 이합집산이 판을 치고 있다”며, “민주·진보 진영이 ‘반윤 최대 개혁 연합’을 이뤄내자”고 했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위성 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정의당도 지난 14일 당대회를 열어 녹색당과 함께 ‘가치 중심 선거 연합 정당’을 추진하기로 했다. 류호정 의원은 15일 “정의당이 다시 민주당 2중대의 길로 가고 있다. 어제는 ‘운동권 최소 연합’을 선언했지만, 조만간 ‘조국 신당’과 개혁연합신당 등과 함께 민주당이 주도하는 위성 정당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며 정의당을 탈당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위성 정당 제도를 방지할 수 없을 때 불가피한 선택지 중 하나이지 않을까”라며 “논의를 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했다. 여기에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이미 민주당과 별도의 신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하고 민주당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친민주당 성향의 ‘조국 신당’을 만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당의 비례대표 제도에 관한 입장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며 “(선거 제도)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것은 민주당의 입장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도대체 민주당의 입장이 무엇인가. 책임 있는 입장을 내주기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