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날 여권은 한 위원장의 사퇴 문제를 놓고 긴박하게 돌아갔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불신임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한 위원장은 7시간 만에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는 입장을 내고 사퇴 요구설을 일축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이날 밤 윤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에서 심야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인터넷 매체 쿠키뉴스는 ‘윤 대통령, 한 비대위원장 줄세우기 공천 행태에 기대·지지 철회’ 기사를 게재했다. 한 위원장은 17일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공식화했는데, 이것이 ‘한동훈식 줄세우기 공천’이라는 비판이 여권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철회하고 위원장 거취 문제는 당에 결정을 맡기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위원장과 김경율 비대위원의 사퇴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국민의힘 이용(초선·비례) 의원은 이날 오후 이 기사를 여당 의원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공유했다. 이 의원은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수행실장을 지냈다. 여당에선 하태경 의원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은 해당 행위’라는 글을 올린 것을 제외하면 다른 의원들은 해당 글에 반응하거나 답글을 달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의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공천 문제로 촉발됐지만, 실제로는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의혹 대응 문제에서 본격화됐다는 해석이 많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날 한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공천 문제보다는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명품 가방 사건을 ‘몰카 공작’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최근엔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지난 18일),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지난 19일)라고 했다. 김경율 비대위원과 영입 인사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 여사 사과를 주장한 데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모인 곳”이라고 했다. 특히 김 비대위원이 명품 백과 관련해 언급하면서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론한 것이 대통령실과 친윤들을 자극했다고 한다. 김 여사 사과 주장은 이후 이상민·하태경·이용호 의원 등 여당 의원들로 확산하고 있다. 그러자 여권 일각에선 “한 위원장이 야당 프레임에 말리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한 위원장은 이날 저녁 국민의힘 공보실을 통해 ‘대통령실 사퇴 요구 관련 보도에 대한 한 비대위원장 입장’이라며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사퇴하느냐’는 본지 질문에 “당연히 안 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이 입장을 밝힌 직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이른바 기대와 신뢰 철회 논란과 관련해서 이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 주장은 부인했지만, 한 위원장이 주도하는 공천에 대해 대통령실이 불만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당정 갈등이 봉합되지 않자 이날 저녁 이관섭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수뇌부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찾아 윤 대통령과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정 갈등이 커져 파국으로 가선 안 된다”며 “다양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김 여사 문제는 기획에 의한 함정 몰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한 위원장이 22일 오전 예정된 당 비상대책위원 회의, 인재 영입 환영식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김경율 비대위원에 대한 여권 일부의 사퇴 요구에 대해서도 한 위원장은 “우리 당의 스타일이 바뀌기 위해 모셔온 분을 사퇴하라고 압박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한 여당 의원은 “한 위원장까지 사퇴할 경우 당은 회복 불능 상태로 갈 것”이라며 “당정 관계나 여당 내부에 추가적 갈등이 터지기 전에 대통령실이 명품 백 문제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정리해 밝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