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은주(왼쪽 사진) 의원이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단상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날 본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이 사직 의사를 밝힌 이 의원의 신상 발언이 끝나자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이덕훈 기자·뉴시스

25일 국회 본회의의 첫 번째 안건은 전날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국회의원 사직서를 제출한 정의당 이은주(비례대표) 의원의 사직 허가 처리건이었다. 국회법에 따라 현역 의원이 사직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투표에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이 의원은 의원들의 무기명 투표에 앞서 신상 발언에 나섰다. 이 의원은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의원직을 그만두게 돼 저와 정의당을 지지해 준 시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이 확정되기도 전에 스스로 의원을 그만두겠다는 낯선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의원은 21대 총선을 앞둔 2019년 말 서울교통공사 노조원 77명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312만원을 받고 지지자에게 37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작년 11월 2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다음 달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자동적으로 의원직을 잃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 의원은 이날 돈을 받은 혐의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의 자율적 운영과 노동자 정치 활동 자유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적인 법리 판단을 받아 보기 위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저는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당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단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하고자 한다”고 했다. 본회의장 일각에서는 일부 의원이 “그럼 사퇴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어떤 의원들은 이 의원이 발언을 마치자 박수를 보냈다. 투표 결과 이 의원의 사직 안건은 찬성 179표, 반대 76표로 통과됐다.

그래픽=김성규

이 의원이 대법원 판결도 나기 전에 스스로 의원직을 사퇴한 것은 현재 6석인 정의당 의석을 4월 총선까지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꼼수’다. 21대 의원 임기 만료 4개월 전인 이달 30일 이후에는 비례 의원이 의원직을 박탈당해도 비례 명부 다음 순번으로 의원직이 승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원이 임기 만료 4개월 전인 이날 자진 사퇴하면서 정의당은 후순위 비례 순번이 의원직을 승계받아 현재 의석수 6석을 그대로 유지했다. 국회는 이런 정의당의 꼼수를 사직서 가결을 통해 승인해줬다.

정의당은 정당 의석수에 따라 선거 기호가 매겨지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이어 ‘기호 3번’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자기들이 제3지대라 칭하는 신당이 많지만 여전히 원내 3당, 기호 3번은 정의당이 되는 것”이라며 “이는 총선 후보들의 TV토론 때 득표에 상당한 영향이 있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돈 문제도 있다. 정당의 국고 보조금은 의석수와 총선 득표수 비율 등에 따라 분기별로 지급되고 선거 전에는 별도로 선거 보조금을 받는다. 작년 4분기 기준 민주당 54억원, 국민의힘 50억원, 정의당 8억원 수준이었다. 정의당 의석이 한 석 줄어들었다면 총선 전까지 4000만원 안팎의 보조금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회 들어 지지율 하락과 당원 수 급감으로 의원들이 1억원대 대출을 받아 사비로 당직자 월급까지 줬던 정의당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액수다.

그래픽=정인성

이날 탈당을 하긴 했지만 금태섭 전 의원 신당에 합류한 류호정 의원의 탈당이 만약 30일 이후로 미뤄졌다면 정의당으로서는 최악의 경우 2석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치 자금법에 따라 국고 보조금 총액의 50%는 교섭단체(20석 이상) 정당이 가져가고 5석 이상 20석 미만 정당은 총액의 5%, 5석 미만 정당은 2%를 받는다. 정의당이 4석이 됐다면 최대 3억~4억원의 보조금 감소를 감수해야 했다.

김종대 정의당 비대위 대변인은 ‘꼼수 사직’ 지적과 관련, “비례대표 명부는 유권자가 선택한 것이고 후임 승계자까지 선거 당시 모두 공개된 것”이라며 “진보 정당의 소수 의석은 국민이 추인을 다 해주신 것이고 그러면 당 입장에서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석수를 지켜야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