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일 이번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에 대해 현행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비례 의석 확보에 필요한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오는 4월 총선은 지난 총선처럼 ‘꼼수 떴다방 위성 정당’의 난립 속에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 방어를 위한 방탄 국회 2탄을 만들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과반 의석의 민주당이 밀어붙이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광주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며 “모든 세력과 함께 위성 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형 비례 정당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통합형 비례 정당’이라고 표현했지만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이 띄운 ‘더불어시민당’ 같은 위성 정당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공언한 ‘위성 정당 금지’ 약속을 이날 발표로 파기했다. 이 대표는 “결국 위성 정당에 준하는 준위성 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당은 이미 위성 정당을 창당하고 총선 승리를 탈취하려고 한다”며 민주당이 추진할 위성 정당은 “정당방위”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위성 정당을 만드는데 민주당이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칼을 들고 덤비는데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 없다”며 “같이 칼을 들 수는 없지만 방패라도 들어야 하는 이 불가피함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위성 정당은 민주당이 4년 전 국민의힘 반대에도 강행 처리한 선거법에서 파생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우리 때문에 위성 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건 궤변이자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현행 준연동형 유지냐’, 아니면 20대 총선까지 적용했던 ‘지역구와 비례를 따로 뽑는 병립형 회귀냐’를 두고 고심해 왔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이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제도”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 입장에선 스스로 만든 현행 제도를 버리고 과거의 병립형으로 되돌릴 경우 당내는 물론 친야 성향 시민 단체의 비판이 쏟아질 상황이었다. 선거제 논의에 관여해 온 민주당 핵심 인사는 “위성 정당을 창당하면 당장 여론이야 안 좋겠지만, 이 대표 입장에서는 같은 편한테 가장 욕을 적게 먹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명계 한 의원은 “민주당이 총선에서 과반이나 1당을 못 하면 당장 ‘이재명 방탄’이 위태로워진다”며 “이 대표가 또 가장 자기중심적이고 실리를 얻는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위성 정당을 통해 들어온 국회의원들에 대한 ‘부실 검증’ 비판이 많았는데 “또 위성 정당이라니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민주당 안에서 각종 논란을 일으킨 김홍걸, 신현영, 양이원영, 양정숙, 윤미향, 이수진 의원이 위성 정당 출신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 추진할 위성 정당에 대해 “민주 개혁 선거 대연합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특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야권에선 “역대 최대 반(反)정권 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녹색정의당과 기본소득당, 진보당 등 원내 정당을 포함해, 옥중 창당을 추진하는 송영길 전 대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까지 아우르는 연합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반윤을 표방한다면 문은 열려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도 반윤이면 함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꿈같은 소리”라는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때 이미 정의당 등과의 비례연합 구성에 실패했다.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 재판을 받고 있는 송 전 대표나 조 전 장관과 함께하면 민주당에 오히려 짐이 될 거란 지적도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거창하게 통합형 정당, 선거 연합을 얘기하지만 결국 누가 당선권에 있는 비례 앞 순번을 갖고 가느냐 하는 싸움”이라며 “지난 총선 때처럼 민주당에 우호적인 소수 정당이 줄을 서서 비례 순번을 배정받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 때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민주당의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서 비례 앞 순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실제 야권 선거연합은 민주당이 녹색정의당이나 진보당과 비례 순번을 협의하고, 민주당이 특정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식으로 ‘지역구 나눠 먹기’가 진행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민주당과 정의당, 진보당은 과거 선거에서도 이런 식의 ‘선거 연대’를 해왔다. 작년 4월 전북 전주을 보궐선거에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당선된 것도 결정적으로 민주당이 공천을 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이재명 대표도 이날 관련 질문에 “결국 지역구 문제를 포함해서 대연합을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비례 연합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지역구 관련 협의도 함께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이날 선거 연합 제안에 김준우 녹색정의당 대표는 “최악은 피했다”면서도 “(지난 총선 때의) 더불어시민당 같은 형태라면 시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희숙 진보당 대표는 “연동형 선거제는 야권 총단결을 제도로 촉진하는 열쇠”라고 했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과 같은 형식으로 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하면서 “위성 정당 난립은 불 보듯 뻔하다”는 예측이 나온다. 2020년 총선 때는 정당 35곳에서 312명이 비례 후보로 등록했다. 비례 경쟁률이 20대 총선은 3.4대1이었는데, 21대 총선에선 6.6대1로 뛰었다. 비례 투표용지는 50cm에 육박했다. 비례 투표용지의 기호 순서는 각 당의 현역 의원 수를 따른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위성 정당이 앞 기호를 확보할 수 있게 ‘의원 꿔주기 탈당’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