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非明) 횡사’ 공천 파동에 휘말린 더불어민주당에서 21일 이재명 대표 사퇴 요구까지 나왔다. 비명계를 의원 평가 ‘하위 20%’로 몰아 쫓아내고 ‘이재명 사당화’를 완성하려 한 장본인이 이 대표 아니냐는 것이다. 의원들은 물론 민주당 출신 전직 국회의장·총리 등 원로들도 이 대표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그래픽=이철원

이날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선 ‘비명 찍어내기 공천’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15명이 발언했는데 “난장판 공천” “의원 평가를 전부 다 공개하라” 같은 주장이 계속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이 대표는 이날 의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대표 측은 비공개 일정이 있다고 했지만 “일부러 피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하위 10% 통보를 받았다고 밝힌 윤영찬 의원은 “할 말이 많았는데 왜 안 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비명계 공천 학살은 없다”며 “원칙에 따라 공천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임 위원장은 논란이 된 의원 평가에 대해선 “하위 20% 평가는 공관위가 한 게 아니라 상설 기구인 선출직공직자평가위에서 진행했고, 나는 평가위가 준 최종 명단만 받아 통보했다”고 했다.

하위 평가를 받은 의원들의 하소연과 항의는 이날도 계속됐다. 하위 20% 통보를 받은 비명계 송갑석 의원은 “국회의정대상을 3년 연속 받았다”며 “300명 중 3년 연속 수상은 상위 0.67%인 2명밖에 없는데 민주당에선 하위 20%인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박영순 의원은 오후 기자회견에서 하위 10% 통보를 받았다며 “이재명 사당의 치욕스러운 정치 보복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이 대표와 공천 관련 책임자들은 사퇴하고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계파색이 옅은 김한정 의원도 오후 기자회견에서 “하위 10% 통보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경선에서 이겨내겠다”고 했다. 이 대표에게 불출마를 권유받은 것으로 알려진 문학진 전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공천이 아닌 ‘사천’을 자행하는 이 대표는 대표직 사퇴와 동시에 정계 일선에서 물러나라”고 했다. 윤영찬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전날 ‘혁신엔 고통이 따른다’고 한 데 대해 “칼자루 쥔 분이 마구 베면서 고통 운운하면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 원로인 정세균 전 총리와 김부겸 전 총리는 입장문을 내고 “이재명 대표가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이 대표가 여러 번 강조했던 시스템 공천의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민주당 승리를 위해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했지만, 지금 상황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또한 승리에 기여하는 역할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김 전 총리 측은 “공천 분란이 계속되면 ‘이재명 선대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라고 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김원기·임채정·문희상 전 국회의장과 만나 공천 상황을 논의했다. 전직 의장들 사이에선 “이 대표가 퇴진하고 비상대책위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친명계에선 “경선 감점을 모면하기 위해 의원 평가를 시비 걸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서은숙 최고위원은 최고위 회의에서 “선거하는데 조용하면 그게 북한이지, 대한민국인가”라며 “국민의힘의 조용한 공천보다 시끄러워도 민주당 공천이 우월하다”고 했다.

전략 공천 갈등도 계속됐다. 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준비 중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안규백 전략공관위원장이 서울 송파갑 출마 의사를 타진했지만 거부했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당의 전략 자산인 유능한 분들은 당 강세 지역보다 중간 정도 지역에 가서 헌신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했다. 그러나 친문 진영에서는 곧장 “송파갑이 중간이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는 곳” “그냥 가서 떨어지란 얘기밖에 안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임 전 실장 측이 “성동은 민주당 텃밭이 아니라 약세 지역”이라는 보도 자료를 내자, 친명계에선 “민주당이 연달아 당선된 곳인데 약세라니 앞뒤가 맞냐”고 했다.

☞비명횡사(非明橫死)

뜻밖의 사고로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뜻의 비명횡사(非命橫死)에서 따온 말. 민주당 의원 평가 하위권에 비명(非明·비이재명계) 의원이 다수 포함됐다고 알려지자 비명계 죽이기 공천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