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孫命順·95) 여사가 7일 오후 5시 39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 전 대통령은 9년 전인 2015년 11월 22일 서거했다.
손 여사는 경남 김해 출신으로 마산여중과 마산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3학년 시절인 1951년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인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당시 이화여대에는 금혼 학칙이 있었지만, 손 여사는 결혼 사실을 비밀로 하고 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손 여사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한 김 전 대통령을 내조했다. 손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서거 때까지 65년 동안 부부의 연을 이어오며 고락을 함께했다.
손 여사는 조용한 내조를 한 대통령 부인으로 평가받는다. 김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이나 대통령 재임 시기에도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에 나서지 않았고, 정치권과도 거리를 뒀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1983년 5월 신군부에 대한 항의로 23일간 단식 투쟁을 벌일 때에는 외신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실상을 알렸다. 야당 시절 손 여사는 손님 대접을 위해 하루에 한 말씩 밥을 했고, 당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집을 찾아간 사람들은 언제든 거제산 멸치에 된장을 푼 시래깃국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1993~1998년 대통령 부인 시절에는 참모 아내들과의 모임을 모두 없앴고, 입는 옷의 상표를 모두 떼고 입을 정도로 구설에 오를 일을 만들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손 여사를 두고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맹순이’라고 불렀다. 2011년 결혼 60주년 회혼식(回婚式) 행사에서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소. 맹순이가 예쁘고 좋아서 60년을 살았지”라며 손 여사 볼에 입을 맞췄다. 김 전 대통령은 손 여사에 대해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남편인 저를 높여줬다. 화를 잘 내는 저에게 언제나 져줬고,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2가지 있다”며 “군사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룩해 낸 일과 60년 전 아내와 결혼한 일”이라고 했다.
손 여사는 2015년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상도동 사저에서 계속 살았다. 2022년 6월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상도동 사저를 찾아 손 여사를 비공개로 예방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여사님께서는 평생 신실한 믿음을 지키며 소박하고 따뜻한 삶을 사셨다. 신문 독자투고란까지 챙겨 읽으시며 김영삼 대통령님께 민심을 전하셨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정치적 동반자의 역할을 해주셨다”며 “우리 국민 모두 여사님의 삶을 고맙고 아름답게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김수경 대변인이 전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김 전 대통령님과 그 옆에서 함께 헌신해오신 손 여사님을 우리 국민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손 여사와 김 전 대통령께서 함께 맨땅에서 일궈낸 후, 후대에 물려주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며 “생전 손 여사께서 보여주셨던 헌신, 따스함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다.
유족으로는 딸 혜영, 혜경, 혜숙씨, 아들 은철, 현철(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씨 등 2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고, 장례는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주최로 5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현철씨 아들 김인규(35)씨는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국민의힘 4·10 총선 부산 서·동구 경선 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