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서울시의회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자,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의 횡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2020년 총선 이후 국회에서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입법 독주’를 벌여온 민주당과 이를 비판해온 국민의힘이 지방의회에선 정반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선 국민의힘 시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됐다. 시의원 111명 중 75명(67.6%)이 국민의힘 소속이고, 이 가운데 60명이 출석해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 36명은 가결을 막을 수 없자 표결에 불참했다.
국회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격렬히 충돌하듯,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처리도 여야와 관련 시민단체들이 수 싸움을 거듭한 끝에 이뤄졌다. 앞서 지난해 3월 일부 시민단체가 시의회에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청구했고, 이 청구는 주민조례발안법이 규정하는 요건을 갖춘 청구였으므로 법에 따라 시의회 의장이 폐지안을 발의했다. 폐지안은 시의회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에서 심사될 예정이었으나, 학생인권조례를 존치시키려는 시민단체들이 발의 무효 소송을 걸고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요구해 받아들여지면서 지난해 12월 처리가 중단됐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시의원 발의 형식으로 폐지안을 다시 냈고, 이 폐지안을 다루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따로 만들어, 교육위원회 대신 이 특위에 폐지안을 보내 심사했다.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만으로 이뤄진 특위였다. 특위는 지난 26일 오전 11시에 폐지안을 상정해 가결시켰고, 시의회 의장은 이를 ‘긴급 안건’으로 분류해 같은 날 오후 2시에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서울시의회에서 절대소수인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일방 처리”를 규탄했다. 민주당 서울시당은 29일 “국민의힘은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어떠한 논의에도 성실히 임한 적이 없고, 폐지안을 다수로 밀어붙여 날치기 통과시켰다”며 폐지안 처리가 “다수당의 횡포만 남은 반의회적 행태”라고 비난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윤석열 대통령이 법률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듯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여당 국민의힘이 의석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와 달리, 서울시의회에선 민주당 의석이 3분의 1에 미치지 않아 조 교육감의 재의요구는 무력화돼 있다. 국민의힘이 시의회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폐지안을 재의결하면 조 교육감이 이를 다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조 교육감은 폐지안이 통과된 지난 26일 저녁부터 29일까지 ‘72시간 천막 농성’을 했다. 농성장엔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이 방문했다. 조 교육감은 폐지안이 재의결되면 마지막으로 대법원에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을 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다수인 지방의회들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지 못하게,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아예 법률로 못박아버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2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국민의 뜻에 역행하는 정치적 퇴행”이라며 “민주당이 학생과 교사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관련 입법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