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열린 21대 국회의원 해외출장 심사 실태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임기 만료를 한 달 앞두고 있는 21대 국회의원들은 대거 해외 출장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어기구 의원은 지난달 25일 스위스·오스트리아 출장에 나섰고, 사흘 뒤엔 같은 당 신동근·고영인 의원이 우즈베키스탄으로 출발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인 소·어 의원은 스위스의 농업인 직불금 제도와 오스트리아의 산림 정책을 돌아봤다고 했고,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신·고 의원은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한국의 보건 의료 지원 사업 현장을 돌아봤다고 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자유통일당 황보승희 의원, 개혁신당 양정숙 의원도 아시아인권의원연맹 총회에 참석한다며 우루과이·아르헨티나 순방길에 올랐다. 이 3명은 2일 국회 본회의가 열렸을 때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과 해병대원 특검법안을 처리한 2일 본회의 직후 의원 두 팀이 또 해외 출장에 나섰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믹타(MIKTA) 국회의장 회의’ 참석을 위해 4일 멕시코 방문에 나섰는데, 여야 의원 5명을 포함해 10여 명을 대동했다. 이들은 회의 뒤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미국을 들렀다가 18일 돌아올 예정이다.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박병석 의원을 비롯한 다른 의원 6명도 국회 평화외교포럼 대표단 자격으로 우즈베키스탄·일본 순방에 나섰다. 국회에선 이들과 별도로 이번 주말까지 5팀이 더 해외 출장길에 오른다.

그래픽=양인성

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1월부터 총선 전까지 의원 34명이 12차례에 걸쳐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4·10 총선 다음 날부터 21대 국회가 끝나는 29일까지 49일간은 의원 57명이 15차례 출장을 다녀왔거나 갈 예정이다. 올 들어 한 차례 이상 해외 출장을 다녀왔거나 갈 예정인 의원은 77명(중복 제외)으로, 재적 296명의 26.0%에 달한다. 국회 관계자는 “매번 임기 말에 해외 출장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국제기구 행사 참석이나 의회 외교 차원에서 필요한 출장도 있지만, 외유에 가까운 출장까지 나랏돈으로 다녀온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원 출장 상당수에서 ‘외교 일정’에 해당하는 것은 그 나라 관료 면담 1~2건뿐이고, 나머지 일정은 대사관 주재 만찬, 교민 간담회 등 식사 자리다. 그마저도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올 초엔 여야 의원 6명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구경하고 왔다. 여기엔 9487만원이 들었다. 한 의원은 지난 3월 동남아 지역 병원 증축식에 참석한다며 출장을 신청해 다녀왔다. 이 출장엔 1793만원이 들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가 이런 해외 출장을 위해 잡아놓은 예산은 매년 커지고 있다. 19대 국회 마지막 해인 2016년에 97억6700만원이었던 ‘의회 외교’ 사업 예산은 올해 202억7600만원으로 8년 새 2배로 늘었다. 의원들은 국회 상임위원회 운영 예산, 의원 단체 지원 예산에서도 일부를 떼어 해외 출장을 간다. 올해 ‘위원회 운영 지원’ 예산으로는 131억2800만원, ‘국회 활동 관련 단체 지원’ 예산으로는 115억9000만원이 잡혀 있다.

의원들이 해외 출장을 단독으로 또는 의원들끼리만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회사무처나 의원 단체 소속 직원들이 ‘의회 외교 지원’ 명목으로 의원들을 수행하고, 현지에선 공관에서 나온 직원들이 이들을 맞이하고 안내한다. 국회의장의 순방길에는 수행원만 20명이 붙기도 한다. 항공편 좌석은 비즈니스석이나 1등석, 숙소는 고급 호텔이 지원된다. 이런 비용 처리를 포함해 의원들의 해외 출장에는 한 번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지원된다. 지난 3월 국회의장과 여야 의원 4명의 영국·독일·네덜란드 방문에는 수행원 20여 명의 출장비를 포함해 7억7750만원이, 지난해 11월 국회부의장의 동유럽 순방에는 1억3474만원이 들었다.

출장 내용이 터무니없어 국회 자체 심의에서 부결되는 출장 계획도 있다. ‘자전거 타는 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친환경 자전거 도시 협력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8일짜리 해외 출장을 신청했으나 ‘외교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거절당했다. 다른 여야 의원 3명도 이달 하순 8일간 싱가포르와 호주를 방문해 민간형 국부 펀드 운영과 연금 개혁 방안을 알아보겠다며 출장을 신청했지만, ‘1년 전 출장과 목적과 방문 국가가 똑같다’며 거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