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2대 총선 당선자 총회에서 우원식 의원이 추미애 당선자를 꺾고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되자 총회장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이 흘렀다. 이날 경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 마음이 추 당선자 쪽으로 기울었다는 관측이 많았었다. 친명계 핵심부에서 조정식·정성호 의원의 후보직 사퇴를 유도하며 추 당선자 추대로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말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변이 벌어지자 정치권에선 “총선 승리 후 야권에서 조성된 ‘이재명 일극(一極) 체제’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날 당선자 총회에서 진행된 국회의장 후보자 경선 투표를 끝내고 우 의원 선출이 선포되자 일부 의원들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봤다. 손뼉을 치거나 환호하는 의원은 없었다. 우 의원도 순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의장은 추 당선자로 굳어졌다는 관측이 대세였는데 대이변”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무기명으로 치러진 경선 득표 결과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2대 민주당 당선자 171명 가운데 169명이 참여한 이날 투표에서 89명이 우 의원, 80명이 추 당선자를 뽑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당선자 171명 중 초선은 71명, 재선은 47명, 3선 이상은 53명인데 추 당선자는 초선 당선자 지지를, 우 의원은 재선 이상 당선자 표를 많이 얻은 것으로 민주당 인사들은 분석했다.
당선자 총회 후 별도로 열린 초선 워크숍에선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는 말이 오가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초선 당선자 중에선 강성 친명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주요 멤버들이 추 당선자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재선 이상 당선자들 사이에선 “재선 이상들이 강성 지지층의 ‘추미애 추대론’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 투표를 한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이번 국회의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선 ‘추미애 추대론’이 일었다. 입원 중이던 이재명 대표를 대신해 박찬대 원내대표가 정성호·조정식 의원의 후보직 사퇴를 설득했다는 말도 돌았다. 이에 재선 이상 당선자들 사이에서 반발 심리가 조성되면서 이변이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두고 경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듯한 당 지도부 행태에 반감을 가진 의원이 적잖았다”며 “후보직을 중도 사퇴한 정성호·조정식 의원을 지지했던 의원 대부분이 우 의원을 찍은 것 같다”고 했다.
강성 지지층이 추 당선자를 국회의장으로 세워야 한다고 당선자들을 압박한 것도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부 당원들은 ‘미애로 합의봐’라는 표어를 만들었고, 추 당선자를 지지한다는 2만여 명의 서명을 들고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했다. 당선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는 당원들도 있었다. 이런 모습이 당 지도부의 경선 개입 행태와 맞물려 당선자들의 반감을 샀다는 것이다. 추 당선자는 현 정부 들어 자신이 장관으로 재직했던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등 자기 색깔이 너무 강하다는 평도 들었다. 한 민주당 의원은 “강경 일변도인 추 당선자 스타일에 대한 일부 의원들의 거부감도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전반기 국회의장을 예약한 우 의원도 강성 친명계로 분류된다. ‘86 운동권’ 출신인 우 의원은 연세대 재학 시절인 1981년 전두환 전 대통령 퇴진 운동을 벌이다 투옥된 이력이 있다.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을 따르는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에서 활동했고 국회의원 보좌관, 서울시의원을 거쳐 17대 총선 때 서울 노원을에서 당선돼 국회에 들어왔다. 18대 총선에선 낙선했으나 19·20·21·22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문재인 정권 초기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지난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 때는 이재명 캠프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작년 7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외치며 보름간 단식을 했고, 4·10 총선을 앞두고선 민주당 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하자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국회의장 경선 캠페인 과정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부하겠다” “8석의 정치를 하겠다”며 대여(對與) 강공을 예고했다. 22대 국회에서 범야권이 확보한 192석에,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8명을 규합하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재의결 정족수(200석)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 의원은 이날도 “국회의장은 단순한 사회자가 아니다”라며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을 넘어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