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전세 사기 특별법 등 법률안 4건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21대 국회가 이날로 종료되면서 이 법안들은 본회의 재의결 절차를 밟지 못하고 폐기됐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맞서는 일이 21대 국회 마지막 날까지 되풀이됐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법률안은 총 14건이 됐다.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 건수(16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민주당은 지난 28일 소집된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법률안 5건을 국민의힘 반대에도 강행 처리했다. 전세 사기 특별법, 민주 유공자법, 농어업 회의소법, 한우 산업 지원법, 세월호 참사 피해 지원법 등이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이날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세월호 참사 피해 지원법을 제외한 4건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피해 지원법도 민주당이 단독 처리했지만 참사 피해자 의료비 지원 기한을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만큼 재의 요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백형선

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전세 사기 특별법은 전세 사기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떼이면 정부가 이를 세입자에게 먼저 돌려주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사기 사건과의 형평성, 수조원에 이르는 재정 부담, 사인 간 거래에 국가가 개입하는 문제 등을 이유로 정부·여당이 반대했다. 민주 유공자법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다치거나 숨진 이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 심사 기준이 불명확하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한우 사육 농가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한우 산업 지원법은 정부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여당에서 반대한다. 농어업 회의소를 설립하고 정부가 운영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농어업 회의소법은 기존 농어업 단체 등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거대 야당의 일방 독주 악법이 없다면 재의요구권 행사도 없다”고 했다. 22대 총선에서 108석을 확보해 21대 국회 때(113석)보다 의석수가 줄어든 국민의힘으로선 민주당이 쟁점 입법을 밀어붙일 경우 대통령 거부권 외에는 이렇다 할 대응 방법이 없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30일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21대 마지막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돼 폐기된 해병대원 특검법을 비롯해 윤 대통령이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한 모든 법안을 재발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