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당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현행 당헌(黨憲) 조항을 개정하기로 하고 30일 시안(試案)을 소속 의원들에게 공개했다. 당무위원회의 결정으로 사퇴 시한을 늦출 수 있게 하는 등 이른바 ‘당권·대권 1년 전 분리’ 원칙에 예외를 두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또 부정부패에 연루돼 기소된 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규정도 삭제하는 쪽으로 당헌을 개정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당대표직 연임을 통한 당 장악력 강화와 차기 대선 도전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맞춤형 개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 당헌·당규개정 TF(태스크포스) 단장인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당헌·당규 개정 시안을 공개했다. 시안에선 당대표나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현행 당헌 조항을 유지하되, 전국 단위 선거 등 상당한 사유가 있으면 당무위 의결로 사퇴 시한을 변경할 수 있게 했다. 민주당 당헌의 ‘당대표의 대선 1년 전 사퇴’ 조항은 2010년 마련됐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이 조항에 따라 대선 도전을 위해 취임 6개월 만인 2021년 3월 사퇴했었다. 그런데 당무위에서 사퇴 시한을 변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현 당무위 의장은 이재명 대표다.
이런 시안이 공개되자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의 대표직 연임을 위한 포석”이라는 말이 나왔다. 현행 당헌대로라면 오는 8월 당대표 임기(2년)가 끝나는 이 대표는 연임하더라도 차기 대선을 1년 남겨둔 2026년 3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 그러나 당헌이 개정되면 2026년 6월 열리는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고 이후 차기 대선 선대위가 꾸려질 시점에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면 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최대한 오래 당권을 행사하며 대선으로 직행할 수 있게끔 당헌을 개정하자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TF는 “당대표 사퇴 시한과 전국 단위 선거 일정이 맞물릴 경우 혼선이 불가피해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TF는 당헌 개정 필요성과 관련해 ‘대통령 궐위(闕位) 등 국가 비상 상황 발생 시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대통령 궐위로 갑자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대선 1년 전 사퇴’ 규정에 묶인 현직 당대표는 대선 출마 길이 막힐 수 있기에 당무위 결정으로 사퇴 시한을 변경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의 외압 증거가 드러날 경우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 등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당헌 개정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TF는 부정부패에 연루돼 기소된 자의 직무를 자동 정지하는 당헌 규정도 없애기로 했다. TF 측은 “윤석열 검찰 독재하에서 억울하게 수사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장동 비리와 선거법 위반 등 각종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 대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부정부패자 직무 정지 규정이 폐지되면 이 대표는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더라도 당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다.
TF는 ‘우리 당 귀책 사유로 재·보궐선거 유발 시 무공천’ 규정도 폐지할 방침이다. 이 조항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할 때 “당의 윤리적 수준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2021년 4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문 사태로 치러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민주당이 전 당원 투표를 거쳐 공천을 강행하면서 논란이 됐는데 아예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TF는 또 당론을 위반한 사람의 공천 부적격 규정을 강화하고 국회의장단 후보 및 원내대표 선출 때 권리당원의 투표를 20% 반영하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하는 내용도 시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