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를 밀어붙여 임명 99일 만에 자진 사퇴시킨 데 이어, 그 후임 방통위원장의 손발을 또다시 묶겠다는 것이다. 탄핵소추가 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김 위원장이 탄핵당하면 방통위는 의사정족수(방통위원 2인 이상)를 채우지 못해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된다.

민주당은 작년 구체적인 법률 위반 사실이 없는 이동관 전 위원장 탄핵을 추진하면서 KBS 사장과 이사진 장악 등을 이유로 내걸었다. 그런데 이번엔 ‘MBC 사수’를 위해 김 위원장 탄핵을 추진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방통위원회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임명권을, 방문진은 MBC 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다. 그런 방문진 이사진 임기 만료가 8월로 다가오자, 방문진 이사진이 친여(親與) 성향으로 재편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통위원장 탄핵을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래픽=김하경

방문진 이사(총 9명)는 방통위에서 임명하는데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이사진은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했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 권태선 이사장을 포함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추천한 이사(6명)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8월 이들의 임기가 끝나면 현 여당인 국민의힘이 6명을 추천하면서 방문진 이사회 구도가 여권 우위로 바뀌게 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7월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진을 외부 단체나 언론 학회 등에서 추천하게 하고 이사진 규모도 각각 21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방송 3법 개정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부여하려는 단체와 학회들이 친야(親野) 성향이거나, 언론노조와 밀접한 곳”이라며 “방송 3법 개정은 민주당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방송 3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자 민주당은 김홍일 위원장 탄핵 추진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선 “방문진 이사진을 임명하는 방통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켜 민주당 우위의 현 방문진 체제를 유지하고, MBC 사장 교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171석을 가진 민주당이 김 위원장 탄핵소추를 추진하면 막을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 이 때문에 여권에선 작년 말 “식물 방통위를 막겠다”며 탄핵소추 전에 자진 사퇴한 이동관 전 위원장처럼 김 위원장의 자진 사퇴 가능성도 거론된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들어 김홍일 방통위원장 탄핵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다. 방통위를 담당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6일 라디오에서 “야 7당이 7월에는 무조건 (방송 3법) 법안이 통과되게끔 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고 의원은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방송 3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김 위원장에 대한 탄핵 가능성을 묻자 “다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언론자유대책특별위원회도 지난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 3법을 재입법하면 새로운 절차에 따라 (방문진)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며 “(방통위가) 이사진 선임을 강행할 경우 김홍일 위원장의 탄핵 사유만 더하는 일”이라고 했다. 방송 3법 개정 전까지 김 위원장은 공영방송 이사진 임명에 관여하지 말라는 압박인 셈이다.

MBC 사장 임명권 등을 가진 방문진 이사회(9명)는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민주당은 방송 3법 개정을 조기에 밀어붙여 8월 방문진 이사 교체 때부터 국민의힘보다 야권 성향 외부 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민주당이 이러는 배경엔 MBC 안형준 사장 교체를 막으려는 것이란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여권 인사는 “만약 친야 우위 현 방문진 이사진이 친여 우위로 바뀔 경우 안 사장 임명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감독·감찰이나 MBC 경영에 대한 평가가 진행될 가능성을 민주당이 우려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21대 때에 이어 이번에도 민주당이 방송 3법 개정을 밀어붙이면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여권에선 민주당이 방송 3법 개정 무산에 대비해 ‘김홍일 위원장 탄핵소추 카드’를 밀어붙일 경우 김 위원장 자진 사퇴로 맞불을 놓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 위원장이 탄핵소추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그럴 경우 방통위는 의사정족수(방통위원 2인 이상)를 채우지 못해 중요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어 방문진 이사 교체가 제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방문진법에 따르면 방문진 이사장과 이사 등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2월 민주당이 탄핵소추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헌재의 기각 결정이 나오기까지 7개월 동안 직무가 정지됐었다”며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김 위원장이 탄핵 소추 이전에 자진 사퇴하고 윤 대통령이 후임자를 임명해 방문진 이사진 정기 교체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하려 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해서도 방통위를 담당하는 과방위원장 자리를 반드시 자기들이 갖겠다고 하고 있다. 또 과방위 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은 최근 방통위원장 궐위(闕位) 시 직무를 대행하는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도 탄핵소추할 수 있도록 하는 방통위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MBC 사수를 위해 이중 삼중 장치를 고안하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