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종결하려 하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 등 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석 앞으로 몰려가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두 번째 발의한 ‘해병대원 특검법’이 4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재표결 부결로 폐기됐던 1차 해병대원 특검법을 수정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법안을 지난 5월 30일 발의했다.

해병대원 특검법은 작년 7월 19일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작전에서 순직한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에 대통령실 등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한 윤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조사 결과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특검법은 특검 임명 절차, 수사 범위와 대상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2차 해병대원 특검법을 두고 “내용이 더 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차 특검법에서는 대한변호사협회가 4명의 특검 후보를 추천하면 민주당이 2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대한변협 추천이라는 단계를 거치지만 특검 선택권이 사실상 야당에 있는 내용이다.

그래픽=김성규

이날 통과된 새 특검법에서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2명의 특검 후보를 추천하도록 했다. 추천 주체가 야당이라는 점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야당이 추천한 2명의 특검 후보를 대통령이 3일 이내에 임명하지 않으면 2명 중 연장자가 특검으로 자동 임명되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특검 임명 지연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대입 때 동점자면 연장자가 합격하는 개념을 차용했다”고 했다.

새 특검법에서는 수사 대상도 사건과 관련해 모든 내용을 포괄하도록 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외압 의혹, 이종섭 전 호주 대사 임명·출국 과정 등이 추가됐다. 공수처는 현재 해병대원 사망 사건의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이다.

새 특검법은 특검에 공소 취소 권한도 부여했다. 이렇게 되면 조사 보고서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거부해 항명 혐의로 재판 중인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공소 취소가 가능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외압의 실체가 없고 현재 공수처가 수사 중인 점을 이유로 특검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공수처 수사 결과가 부실하면 내가 특검을 주장할 것”이라고 했고 아직 공수처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국회 재표결, 민주당의 특검법 수정안 재발의로 이어지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재임 2년간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최다인 14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모든 법안을 재발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여권은 헌법상 권한인 거부권으로 악법을 막는 것은 대통령의 의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위헌 소지의 법안은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미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임기 중 거부권을 660회 행사했다”고 했다.

전날 오후 3시 40분부터 특검법 상정을 반대하며 시작된 국민의힘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은 약 26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6시쯤 강제 종료됐다. 민주당은 국회법에 따라 무제한 토론 24시간 이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토론을 끝낸 뒤 특검법을 강행 처리했다.